성당에서 머리에 천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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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머리에 천을 쓰는 이유


2020. 11. 15.


말 그대로 머리를 '가리는' 용도의 천. 한국 천주교에서는 ‘미사보’라 불리나 영어로는 간단히 ‘베일’이다. 가리는 용도의 이 천은 존경을 표해야 할 어떤 존재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인물 레베카(창세기 24,65)는 남편이 될 이사악을 보고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고 하며, 결혼식의 면사포(面紗布)도 이런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여러 문화권에서는 아내 될 사람이 남편 될 사람에게 결혼식 전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리는 행위가 천상의 거룩함, 영광이 곁에 있음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모세는 하느님과 단둘이 대면할 때는 너울을 벗고 있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만날 때는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고 한다(탈출기 34,35). 하느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얼굴이 빛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가기를 두려워했다. 모세의 얼굴이 하느님을 내비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리는 천은 거룩한 대상이 곁에 있음을 알리며, 이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표시하기도 한다.



남성은 쓰지 않는다. 다만 남성 신자들이 단 한 번 미사보를 잠시 쓰는 경험을 할 기회가 있을 수 있는데, 세례성사 때이다. 전통에 따르면 세례성사 중에 영세자에게 순결을 의미하는 흰 옷을 입혔는데, 예식이 간소화되면서 이때 여성 영세자에게는 흰 미사보를 머리에 씌워주고, 남성 영세자에게는 잠시 머리나 어깨에 흰 천을 얹거나 둘렀다가 떼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때 사용되는 흰 천이 높은 확률로 흰 미사보이다.

남성의 경우 성당 안에서 모자 등을 쓰지 않는 것이 예절이며, 한국 천주교에서도 모자를 쓰고 미사 참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수시로 안내하고 있다. 과거 모자가 필수요소를 이루었던 서양 복식 예절에 따르면 남자는 성당 안은 물론 실내에서, 그리고 타인에게 경의를 표할 때에 탈모하는 것이 예절이며, 특히 제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탈모하지 않고 거수경례하는 것이 예절인 군인과 경찰조차도 성당 안에서는 탈모를 한다. 한국군의 경우 예절을 모르는 군인을 위해 아예 군종병이 성당 입당 전 탈모를 하도록 안내를 하고 있다. 한국 전통에 따르면 남자는 실내에서도 누울 때가 아니면 남의 앞에서 머리에 쓴 것을 벗지 않는 것이 예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국 천주교회의 미사 거행 사진을 보면 남자는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할아버지까지도 예외없이 탈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주교관(미트라)을 쓰는 주교들이나 교황조차 미사 중 하느님께 기도를 하는 부분에서는 주교관을 벗고, 주교나 교황의 권위로 축복을 하는 부분에서만 주교관을 쓴다. 결국 남자는 성당 안에서 및 기도할 때에 탈모하는 것이 예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