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즐겨먹던 음식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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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즐겨먹던 음식 '평양냉면'


2023. 4. 29.

평양냉면은 평안도 지역 냉면과 그것에서 유래한 대한민국 냉면의 일종이다. 전통적 현지의 발음은 ‘피양냉면’에 가까웠다. 북한이 주민의 두음법칙과 사투리를 교정하며 '평양랭면'이 규범적인 발음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양냉면이라는 의미는 좁게 보면 평양 근교, 넓게 보면 평안남도 일대에서 유래한 냉면이다. 문헌적으로는 고려 초기에서 중기 때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 중후기에 생산된 문헌들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1973년 북한에서 간행된 요리 서적에 의하면, 평양냉면은 현재 평양의 대동강구역 의암동 지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며, 메밀 수제비 반죽을 국수로 뽑은 것이 시초라 한다. 고려 중기의 냉면을 기록한 고문헌에는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는 내용의 기술이 있다.

다만 메밀은 글루텐 성분이 금방 날아가 국수를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이를 만드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며 손이 많이 드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극소수의 몇몇 문헌에서만 냉면과 비슷한 방식의 음식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나올 뿐, 17세기 이전까지는 냉면에 관한 기록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를 토대로 하면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냉면 문화가 있었으나 소수 계층 및 지역에 한정되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 냉면 문화가 보편적으로 퍼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앞서 설명했듯 17세기 중반까지는 냉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발견되지 않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우리 문헌에서 냉면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평양냉면은 대중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고, 겨울철 별미로 사랑받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소수의 양반가에서나 먹던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았지만, 17세기 후반 이후로는 겨울철 평안남도 지역 대부분의 주막에서는 냉면을 사 먹을 수 있었고, 요정이나 관상같은 요릿집에서도 냉면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평양냉면은 외식 음식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가정에서 흔히 해먹는 요리로 퍼져나가면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2018년 JTBC에서 북한의 촬영감독들과 공동 제작한 '서-평 두 도시 이야기'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18세기 평양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냉면가'가 버젓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을 찾아 보면, 조선시대의 평양냉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메밀을 주 재료로 삼는 면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면 무조건 쌀 농사를 지었지만, 평안도 일대에서 쌀 농사가 주류 작물로 정착된 것은 수리 시설이 정비된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였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700~900mm 정도의 소우지(小雨地)였기 때문에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 물이 빠지지 않게 하는 진압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만큼 기후가 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벼를 많이 재배하지 않았다. 또한 밀 농사는 쌀과 재배 시기가 겹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데다, 보리, 녹두, 조, 수수 등의 대체 곡물에 밀려 한반도에서는 재배하는 농가가 극히 드물었다. 녹두 역시도 밥을 해먹거나 가루를 내어 전을 해먹는 문화가 국수로 만드는 문화보다 훨씬 발달하였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우며 동부와 북부는 온통 산악지형인 평안도 일대에서 가장 흔한 작물은 바로 메밀이었고, 이에 따라 메밀의 수확 시기인 늦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국수를 만들어 먹는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는 평양뿐만 아니라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등등 중부 지역까지도 보편적인 문화였다. 1849년 <동국세시기>에서는 '냉면은 겨울 계절음식으로 평양이 으뜸'이라 하였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냉면을 먹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함흥냉면과 공통점이 있다면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문화라는 점인데, 이것은 한반도 남부의 잔치국수, 칼국수로 대표되는 뜨거온 온면 문화와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한반도 북부의 국수 문화가 차가운 냉면 형태였다는 점은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 메밀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앞서 설명했지만 메밀의 수확 시기는 늦가을이어서 겨울에 주로 구할 수 있는 작물이었고, 글루텐 성분이 금방 날아가는 메밀의 특성상 뜨거운 국물에 말면 아예 젓가락질을 못할 만큼 쉽게 끊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형태를 보존할 수 있는 차가운 국수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 지금의 평양냉면이라 볼 수 있다. 추가로 수확 시기와 동시에 동치미를 같이 담그기 때문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평양냉면의 원형이며, 여기에 양반가나 상인처럼 부유계층이 동치미 대신에 고기육수를 사용한 냉면을 즐기면서 또 하나의 육수 형태가 추가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기록 중 몇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면 1849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는 언급이 나오며,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은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 김치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 나니라."라고 하였다. 《시의전서》 냉면 편에는 "청신한 나박김치나 좋은 동치미국물에 말아 화청하고 위에는 양지머리, 배와 배추통김치를 다져서 얹고 고춧가루와 잣을 얹어 먹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를 보면 지금과는 만드는 방식이 크게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메밀국수, 돼지고기, 김치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냉면, 감홍로, 골동반을 평양의 명물로 소개하였다.

평양냉면의 유명세는 서울까지 퍼져,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미 한성에서 대중화되었다. 매운 걸 먹지 못하던 고종이 즐겨먹던 음식이기도 하다.

평양냉면의 정의는 일단 동치미를 섞은 고깃국물로 맛을 낸 차가운 메밀국수다.

다만, 세계적으로 차가운 국수 자체가 꽤 드문 편일 뿐더러, 차가운 국물, 그것도 차가운 고깃국물은 더 찾기 힘든 조합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 평양냉면은 일반적인 고기국수와는 꽤나 다른 맛을 내는 면 요리다. 유래 자체는 메밀이라는 작물이 끊어지지 않는 면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그나마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것이 훨씬 끊어짐이 덜하므로 지역의 특성과 맞물려 완성된 것이겠지만, 더군다나 냉면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국 원시적인 형태의 조미료들이 도입된 이후인지라, 조미료의 사용으로 더더욱 맛이 달라지면서, 하나의 통일된 요리 종류로 꼽기 심히 난감해젔다.

전반적으로 남한에서 평양냉면이라 하면, 새콤달콤한 맛이 아닌 밋밋한 맛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밀히는 밋밋한 국물이 아니라, 뭐라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고깃국물 맛을 찾는 것이다. 뭐 이러면 그냥 고깃국물만 내면 되겠지만, 차갑게 식힌 고깃국물이라는 점 때문에 맛을 내는 방법이 더욱 요상해지게 된다. 이러다보니 고깃국물 맛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물건이 나오게 된다.

냉면이란 게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퍼진 시기가 MSG가 도입된 시기다. 때문에 평양냉면에서 조미료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 조미료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서 맛이 또 천차만별이 된다. 이 또한 차가운 고깃국물을 가진 면요리이면서 여기에 동치미도 섞인 기묘한 조합 탓.

결국 동치미+고기육수+차가움+메밀면이란 매우 단순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평양냉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다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평양냉면이 도대체 무슨 맛이냐는 논쟁은 대한민국 요리에 있어서 최대의 미스터리가 되어 지금까지 논란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평양냉면이란 이름에 대한 정통성을 쥔 평양이 현재 북한의 수도이고 남북 간의 교류가 끊겨있기 때문에, 지리적 기준으로 보면 남한에서 먹는 냉면은, 설령 미묘한 고깃국물을 추구하는 냉면이라도, 애초에 평양이 아니니까 완전한 의미의 평양냉면은 아니다. 새콤달콤한 맛이든 밋밋하게 느껴지는 고깃국물이든, 엄밀히 말하면 평양에서 만든 냉면이 아니므로, "남한식" 평양냉면이다.

더군다나, 남한에 이북에서 월남해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고, 지속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이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냉면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논쟁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즉, 설령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서 평양에 직접 갈 수 있게 되어도 평양냉면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심지어 옥류관 출신 탈북 셰프도 평양냉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한다.

남한에서 통용되는 인식을 모아보면, 최소한 "평양식"이라 하면, 새콤달콤한 맛의 냉면이 아니라, 은은한 고깃국물을 가진 맛을 가진 냉국수, 그중에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맛이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메밀이 제대로 들어간 면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은 (적어도 남쪽 생각으론) 평양 현지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으로 여겨졌고, 김정일 때까지는 교차검증 가능한 사실이기도 했다. 일단 이런저런 루트로 방북한 이들로 인해, 진짜 평양냉면의 국물은 새콤달콤한 국물이 아니라 고깃국물이란 점만큼은 교차검증이 됐었기에, 평양이 아닌 곳에서도 진정한 평양냉면이 뭔지를 두고 어느 정도 갑론을박을 할 수 있었다.

 

옥류관의 평양냉면과 쟁반국수, 고기쟁반국수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평양냉면의 대표격인 옥류관의 풍조가 "양념을 적당히 쳐서 먹는" 것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통설이 위태로워진 상태. 물론 국물 자체는 기존의 은은한 고깃국물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원래 안 넣던 양념을 추가로 쳐 먹기 시작한 시점에서, 평양 현지에서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옥류관 냉면의 이러한 변화가 남한식 평양냉면을 작게든 크게든 의식한 결과인지, 우연의 일치에 의한 수렴 진화인지는 불명. 북한 식당에서는 면발에 식초를 뿌리는 방법을 선전하며 '김일성의 발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진짜로 김일성의 발명인지는 불분명하나 그들의 취향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소리는 맞다.

물론 옥류관이 전부는 아니다. 평양냉면은 음식점 하나가 레시피를 독점하고 표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식문화일 뿐이다. 또한 실향민들과 이북 출신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남북단절 이후 남한에서는 교조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예로 면의 메밀 함량을 일정 비율 이상을 준수하는 남한식 평양냉면에 비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옥류관의 면은 이미 메밀은 포기한지 오래이다. 오히려 남한의 평양냉면이 어떤 면에서는 더 원류를 지키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무리한 추정이 아니며, 다른 음식중 예시를 들자면 돈가스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 현대 일본식 돈가스보단 한국식 돈가스가 오히려 전통적인 돈가스 제조방식을 따르고 있다.

옥류관 역시 남북 단절 이후 개업된 지 62년이 지났다. 지배계층의 취향 등 시대의 변화로 옥류관이 62년 전의 당시의 조리법과 맛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고 보기엔 크게 무리가 있는 상황에서 남과 북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보아야 한다. 평양냉면 우월주의자들이 북한과 남한의 차이를 부정하고 '무조건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교조적 인식을 강요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역으로 현재의 옥류관이 평양에 위치해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 정의라 맹신하며 "거기서는 양념도 넣어먹고 식초도 친다던데?" 라는 식으로 남한의 평양냉면은 평양냉면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비아냥거리고 이죽거리는 공격적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남북의 단절이 가져온 변화의 방향성 차이로 인해 통일 이후에는 더더욱 풍조가 바뀌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리 되면 "평양사람들이 즐겨먹는 그 어떤 냉국수"와 지금 남쪽에서 생각하는 원조 평양냉면은 전혀 다른 물건이 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양냉면이란 이름에는 결국 '평양'이 들어가기 때문에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의 정체성 역시 평양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지만, 만약 통일 후 평양쪽의 냉면 맛이 확 변하거나 계속해서 다른 길을 가게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평양냉면의 정의부터 재정립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금강산 관광을 가면 코스로 옥류관에 들러서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었다. 단, 맛이 남한의 일반적인 조미료 냉면과는 전혀 다르니 일반적으로 먹었던 냉면의 맛을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제대로 된 평양냉면 집에서 먹었다면 북한의 평양냉면이라 해서 그다지 낯선 맛은 아니다.

다만 '평양냉면'이라는 종류의 냉면을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정말 생소할 정도의 맛이 될 수 있다. 비 온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와 흡사한 향이 나기 때문이다. 가이드 왈, "남한에서는 조미료를 쓰지만 이북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기 때문에 맛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라고 했다. 이 맛이 생소할지 모르는 관광객을 위해 특제 소스를 준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넣으나 안 넣으나 비슷하다고.

평양 대동강에 있는 홀인 옥류관에서 나오는 평양냉면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우려내고 여기에 동치미를 섞은 육수에다 메밀과 전분으로 반죽한 면을 쓰는데, 방문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맛있다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냉면 국물이 어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국물이 얼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물은 상당히 차가운 편이다. 한국에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도 국물에 얼음을 띄워서 주지는 않는다. 또한 북한에서는 냉면을 잘라먹지 않는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의 냉면집에서 냉면을 잘라주는 모습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평양냉면'이라고 하면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심심하고 밍밍한 맛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그래서 생애 한 번도 평양에 가지 않은 사람이라도 평양냉면을 먹을 때는 심심하게 먹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아무 조미료를 넣지 않고 오직 육수와 면의 맛으로만 심심하게 먹어야 진짜 평양냉면이라는 것. 이 때문에 평양냉면이 맛없다는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