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범인이 살아서 검거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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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범인이 살아서 검거된 이유


2024. 4. 25.

 

범행 이전에는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 거주했다. 운송업과 같은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였으나 1999년부터 우울증이 발병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후 2001년 4월에는 뇌졸중까지 얻는 바람에 몸 오른쪽의 대부분이 마비되었고 실어증도 얻어 같은 해 11월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뒤 별다른 직업 없이 백수로 지내 왔다. 이 때 김대한의 가족에 따르면 병원에서 받은 중풍 치료가 잘못되어 자신이 장애인이 되었다고 알고 있던 것이었는지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2002년 중순부터는 정신질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방화 사건을 일으키기 열흘 전에도 자신이 치료받던 정신병원에 찾아와 "죽여달라" 며 난동을 부려 병원 관계자들이 제지하는 일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김대한이 자신을 의료사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김대한이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적극적인 고발 조치나 손해배상 청구 등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2003년 2월 18일, 김대한은 어느날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집 인근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플라스틱 샴푸통에 담은 뒤 샴푸통과 라이터를 들고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에서 안심 방면으로 운행하는 1079호 전동차에 탑승했다. 1호차 경로석에 앉아 있던 김대한은 열차가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플라스틱 통에 담긴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불은 김대한의 왼쪽 다리에 옮겨붙었고 자신의 몸에 불이 붙자 당황한 김대한은 그대로 열차 밖으로 탈출했다. 이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시작이 되었다.

김 씨가 불을 지른 1079호 전동차는 문이 열려 있어서 많은 승객들이 탈출했지만 마침 반대편에 정차한 1080호는 화재 사실을 모른 채 이미 전기까지 나가 버린 중앙로역에 그대로 정차했고 대피 명령이 지연되는 바람에 많은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커졌다. 결국 화재는 1079호, 1080호 2개의 전동차와 역사를 완전히 전소시킨 뒤 진화됐으며 198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당했다. 김대한은 사건 직후 역사 밖으로 탈출해 일반 승객들처럼 행동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승객의 신고로 체포됐다. 범행 동기는 뇌졸중 치료를 받았음에도 전혀 회복되지 않아 자살을 생각했는데 혼자 죽는 게 너무나도 억울해서 사람 많은 대중교통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정작 본인은 화상을 입게 되자 겁을 먹고 도망가면서 자살에 실패했고 무고한 다른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후 기소된 김대한은 1심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진주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되었다.[8] 이듬해인 2004년 8월 30일 오전 8시 45분 뇌졸중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진주의료원[9]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한편 워낙 큰 범죄를 저지른데다, 이미 방화를 저지르기 전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컸던 탓에 친척들도 김대한의 가족에 대해선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