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빼고 모든걸 다 가진 남자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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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빼고 모든걸 다 가진 남자 '박진영'


2019. 1. 1.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댄서, 사업가겸 배우 박진영은 JYP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서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의 주식 16.16%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18년 8월 주식시장에서 시가 기준으로 1천5백억 원에 달한다.

박진영은 과거 JYP의 사장(대표이사)이었지만 현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수만, 양현석과는 달리 박진영은 JYP의 사내 등기이사로서 경영상 법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아티스트 및 프로덕션, 영업 업무를 맡는다. 특히 회사 내 신인 아티스트 런칭 때는 최종 결정 권한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권에선 이니셜인 JYP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프로듀서로서는 J.Y.Park "The Asiansoul"이라는 이름을 쓴다.

1990년대에는 가수였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음원 저작권 수입 1위를 기록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LP, 카세트 테이프, CD, 다운로드&스트리밍까지 음원시장의 변화를 전부 겪어본 가수이기도 하며 본인의 노래 <살아있네>에서도 언급했다.

1971년 아버지 박명노, 어머니 윤임자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해보는 것은 다 해보는 '사고뭉치'였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직장이 해외 지사로 발령 나면서 온 가족이 잠시 미국 생활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때부터 춤에 재능을 보여서 흑인들과 댄스배틀을 해도 1등을 했다고 한다. 이 때 그의 미국 생활은 그로 하여금 흑인음악에 대한 매력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박진영은 더욱 음악에 빠져들었고 부모님은 자식의 뜻을 존중해 현재의 "딴따라" 박진영이 탄생했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1990학번이며, 보통 알려진 1994년보다 2년 전인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로 대학 재학중에 데뷔했지만 이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부터 작곡가 김형석의 밑으로 들어가 2년간 온갖 수발을 들며 작곡의 A부터 Z까지 모두 배워오는 등 본격적인 창작의 밑거름을 다지기 시작한다.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3반 과방에서 1991년-92년 지질학과 MT 앨범을 뒤져보면 박진영이 나온 사진도 한 개 있다. 가수로 데뷔한 뒤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했다가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하며, 학습의지가 높아 교수추천을 받고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 편입했다. 편입 과정에서 지질학과 출신에다가 딴따라 연예인이 왜 정치학과 대학원에 가냐고 교내 여론이 말이 아니었지만, 교지에서 사실을 해명했다고 한다. 뭐 그래도 중퇴하기는 했지만...

박진영은 1994년 9월 '날 떠나지 마' 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을 내놓았다. 연대 재학 중이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이 소속사 저 소속사 다니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려줬지만 번번히 독특한 체형과 마스크 때문에 거절을 받았다. 계속 오디션에 떨어지는걸 보다못한 클론의 구준엽이 박진영을 직접 이수만과 만나서 오디션을 보게 해줬지만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이수만과 떨어진 박진영 자신이 현재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가수 출신 음반기획사 사장. 심지어 박진영은 원더걸스를 통해 그 이수만의 소녀시대를 앞섰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작곡가 김형석이 소속된 기획사에 뽑혀 데뷔 준비를 했는데 원래는 피아노 발라드 곡이었던 '날 떠나지 마'를 댄스곡으로 편곡하자는 제안을 받고 댄스곡으로 변신해서 타고났던 춤을 탑재한 뒤 가요계에 혜성같이 데뷔했다.

'흑인 필링'을 강조했던 그의 고릴라 같은 비주얼과 춤과 노래는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왔으며, 당시 엉덩이 춤은 대중에게 남자의 섹시코드를 거의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강조했던 충격적인 안무로 기억된다. 결국 인기에 힘입어 1995년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음악프로에서 4번의 1위를 수상했으며 후속곡으로 활동한 '너의 뒤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1집은 1995년까지 47만장의 음반판매량을 달성했다.

1995년 2집에서는 청혼가를 타이틀곡으로 해서 활동했으며 그 당시 R.ef, 서태지와 아이들 등 초대형 가수가 많았음에도 가요톱텐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다른 가요프로그램에서도 1위 후보까지 오르면서 계속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후속곡인 '엘리베이터'는 묘한 분위기의 가사나 이소라와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의 성적인 분위기가 파문을 불러왔지만 당시 경향신문이 '한국의 타이슨'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정도로 잘 나가는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짜 대단한 것이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연예인 외모의 잣대가 심한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박진영은 섹시스타의 이미지, 그리고 그의 학벌과 조리있는 말투 덕분에 뇌섹남의 이미지 거기다 자신의 외모로 맘껏 농담하고 즐길 줄 아는 여유까지 겸비해 정말 외모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게다가 그룹도 아닌 솔로다. 그리고 특유의 긴 팔 덕분에 흐느적 거리는 춤선과 잘 어우러졌다.

지금은 비닐 바지 짤방이 흑역사라고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역시 섹시스타 박진영이다" "박진영이라서 개간지난다" 라는 평이였고 그 비닐 바지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수선집의 노신사가 개발했다고 한다. 특유의 섹시 이미지 덕분인지 보통의 아이돌과는 달리 엄마들의 잡지에도 종종 등장하고는 했다.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3, 4집을 발표해서 '그녀는 예뻤다', '썸머 징글벨', '난', '허니' 등의 히트곡을 계속 내면서 가수로써 성공했고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2001년에 발매한 6집도 흥행에 성공했으나 이후 6년여 간 음반 발매는 멈추었다.

2000년대에는 본인의 음악 활동보다는 프로듀서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90년대말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god가 '국민 그룹'이라고 불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박지윤이 박진영의 프로듀싱을 받으며 '성인식'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초반.

2002년에는 새롭게 데뷔시킨 비도 데뷔곡 반응은 심심했으나 후속곡인 '안녕이란 말 대신'이 크게 히트하고, 별의 경우도 '12월 32일'이나 '안부'같은 곡이 상당히 인기를 얻는다. 보컬 그룹으로 결성한 노을도 푸쉬에 비해 크게 인기를 얻었다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나름의 인지도 정도는 얻는데 성공한 편. 2005년에 데뷔앨범이 나온 임정희는 데뷔 전 기대치에 비해 조금 아쉬운 결과를 얻는다. 다만 데뷔곡인 'Music is my life' 자체는 나름 많이 알려진 편.


2000년 후반에는 본격적으로 아이돌 그룹들을 데뷔시키기 시작한다. 2007년에 원더걸스, 2008년에 2PM과 2AM이 데뷔한다. 특히 원더걸스의 곡 Tell Me는 대한민국에 UCC 열풍과 후크송 열풍을 몰고 온 데다 현재 불고 있는 걸그룹 열풍의 시발점. 가요계 판도를 바꿨다고 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고 연이어 'So hot'과 'Nobody'까지 연이어 대히트를 시킨다. 2PM 역시 남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정상급 보이그룹의 반열에 오른다. 대부분의 곡을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만큼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시기였다.

거기에 2007년에 발표한 본인의 7집도 나름 인기를 얻는다. '니가 사는 그 집'이 독특한 안무와 인상적인 가사를 기반으로 인기를 끌었고, 음악적으로도 인정받아서 흑인 음악 전문 웹진 리드머에서 꼽은 2007년 올해의 알앤비 앨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본격적으로 '미국병'에 걸리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미국에서도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시도하며 여러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기도 하고 JYP의 미국 지부를 설립해서 소속 연습생들의 미국 데뷔를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성과는 좋지 않았던 편. 특히 2008년에 국내에서 인기가 최절정기에 다달은 원더걸스를 미국으로 데려가 활동하게 하는 바람에 국내 활동이 올스탑되고 멤버가 교체되는 내홍까지 겪게 된 것은 원더걸스 팬덤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지탄 받는 부분.

정리하자면, 2000년대는 주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여러 가수들을 정상에 올려놓거나 못해도 중박은 치는 등 상당히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으나, 그것을 기반으로 무리한 도전을 했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 본 시기라 할 수 있다.

2007년 7집 <Back to Stage>를 발매하여 가수로서 복귀하였다. 타이틀 곡 '니가 사는 그 집'이 성공하였다. 현재는 정규앨범을 내지 않고 미니앨범 및 싱글앨범으로 활동중인데 최근에 내놓은 대표곡으론 'No love, No more(2009)' '너뿐이야(2012)', '놀만큼 놀아봤어(2013)' 가 있다. 가수로써의 티켓파워도 좋은 편인데 2007년부터 2013년까지 그의 단독콘서트 '나쁜 파티' 전국투어는 매회 매진을 기록했으며, 콘서트 내용도 수위가 높은 편이지만 볼만하다고 한다.

2015년 4월, 래퍼 제시와 함께 '어머님이 누구니' 라는 싱글을 발매했다.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발매 5시간 뒤 역주행 1위를 차지했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각종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걸그룹 TWICE 멤버 선발을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의 단독 심사위원을 맡았다.

2015년 7월, 무한도전의 2015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 가수로 참가했다. 여기서 유재석과 같이 작업하게 되었다. 원래 유재석은 밴드 혁오를 파트너로 선정했으나, 박진영이 이의를 제기하여 유재석을 자신의 파트너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무도 가요제 최고의 수확은 무한도전내 공인 진상 제왕인 정형돈을 능가하는 진상과 앙탈, 징징이었다. 5부에서 무대에 쓸 효과들을 놓고 게임을 하는데 남성 듀오 그룹명 대기에서 수와진의 발음이 나빠 소화제, 소화기 등으로 들려서 무효 처리될 상황이 되자 울먹이는 목소리까지 더해진 전대미문의 앙탈을 부린 끝에 게임을 한번 더해서 다른 팀에게도 폭죽을 제공 하기로 했다.


박진영이 워낙 예능출연이 적다보니 이런 면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참으로 대박이었다. 또한 객관식 퀴즈를 하는데 정준하가 12번을 찍고 이에 재석는 보기가 11번까지라고 말하고 이때는 마지막 보기가 정답이라 다음 타자 진영은 다 차려진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되는데 난데없이 정답을 1번이라고 해서 파트너 재석과 쩜오 명수를 비롯한 출연진들에게 비난을 한바가지로 들었다.

그리고 미국식 흥을 가진 자신은 110 BPM 정도의 느릿한 곡을 원하는데 한국식 흥인 재석은 최소 130BPM은 넘길것을 요청하고 이에 첫곡 밤밤밤을 치우고 5번의 시도끝에 110베이스 라인에 130 멜로디를 추가한 I'm so sexy를 만들었다. 전체적인 평은 흥겹고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4월 신곡 '살아있네'를 발매하면서 자신의 가수생활을 총망라했다.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친 박진영을 자체 패러디했는데, CEO의 명성에 가려진 박진영의 음악인생을 돌아볼만한 싱글이다.

10월 17일 I.O.I의 마지막 앨범 'Miss me?'의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음악, 안무, 의상, 뮤직비디오등 전방위에 걸쳐 모든 부분을 직접 제작했다.

10월 18일 모바일 게임인 모두의 마블 for Kakao 로고송을 본인이 직접 리메이크 하였다.

2017년에는 5월 15일 컴백하는 TWICE의 앨범인 SIGNAL의 타이틀곡 SIGNAL을 프로듀싱, 동년 12월 11일에 발매된 Merry & Happy의 Merry & Happy 작사를 맡았다.

2018년에는 4윌 9일 컴백하는 TWICE의 앨범인 What is Love?의 타이틀곡 What is Love?를 작사 작곡 했다.

박진영은 40살이 넘어서 우리가 왜 사는지, 그리고 신은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해서 고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빅뱅이론 및 양자역학 등 물리학과, 생물학 관련 서적부터 탐독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 등 온갖 종교서적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러다 답을 찾기 위해 결국 2012년 봄부터 여름까지 몇달간 예수의 탄생지인 이스라엘로 떠났다.

이스라엘로 떠났을 때 그는 거의 모든 문명기기를 갖고 가지 않았으며,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에서 대박을 쳤을 때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그는 결국 그 동안의 번뇌와 고뇌를 음악으로 녹여낸 앨범 'half time'을 발표한다. 거기서 그는 노년의 자기 모습을 여러 가지로 상상하여 보게 된다. 그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 중 하나가 '놀만큼 놀아봤어'이다.

2012년 4월 30일 자의 힐링캠프 이후로 그의 종교관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17년을 한결같이 빡빡하게 살아온 박진영이 2010년부터 우주의 진리를 알고 싶어 매주 7일 중 하루의 시간은 반드시 공부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물리학, 생물학, 진화론, 창조론, 종교 등이라고 한다. 2013년 9월 14일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창조설', '지적설계'를 언급했다(자막은 '지적설교'라고 잘못 나옴). 세상의 진리를 찾기 위해 물리학과 창조설, 진화론을 모두 공부했다고 했다. 지적설계를 언급하며 기독교인은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창조주는 인정하지 않지만 어떤 다른 창조자가 있음을 믿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박진영의 세계관/우주관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관련인터뷰 혹은 힐링캠프 2012년 4월 30일자 방송을 참조바람. 힐링캠프에는 2014년과 2015년에도 각각 한차례 더 출연하였다.

하지만 2018년 디스패치 보도로 촉발된 구원파 논란을 통해 기독교 신자임을 인정했다. 단 구원파는 물론이고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밝혔다. 드러난 사실을 감안하면 그동안 개독 이미지를 감추고 쿨한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양자역학 등의 과학 용어들을 언급 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위 사진은 힐링캠프(2015년 11월 23일 방송)에 출연하여 밝힌 자신의 뇌구조이다. 박진영은 현재 양자역학 공부에 심취해있다고 한다. 양자역학은 원자 수준 규모의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물리학인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궁극에는 우주와 나의 존재 및 본질에 대해 철학적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문에 양자역학이라는 자연과학을 인문학적으로 오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코펜하겐 해석을 잘못 적용해 인간은 한 곳에 고정된 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 어느 곳에서든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든가, 관측에 의해 상태가 결정되니 우리의 마음이 모든 법칙을 초월한다든가 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박진영 역시 양자역학에 대한 이러한 인문학적 오해 때문에, 존재와 절대자, 행복, 우리가 왜 사는지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해답을 양자역학에서 찾으려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박진영이 지질학을 전공한 이과 출신이기 때문에 물리학을 오독할 우려는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역사학도 문과니까 역사학 전공자는 문학에 대해서도 잘 알것이라는 주장이나 다름 없다. 양자역학의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수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이는 물리학 전공자라도 학부과정 만으로는 벅찬 일이다. 학창시절에 따로 공부를 한 게 아니라면 지질학을 전공한 박진영의 물리학에 대한 식견은 물리학 비전공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할 수 있다. 물론 흔하지는 않지만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전공자 이상의 지식을 가진사람이 더러 있고, 박진영 또한 이러한 예외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물리학적 지식에 대한 역량 자체를 증명해 보인적은 없으니 일단 현재로서는 비전공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쪽이 더 개연성 있다고 판단된다.

힐링캠프를 비롯하여 그 동안 여러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이 한 발언을 종합해볼 때 왜 사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다가 과연 신이 있는지, 우주는 왜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등 우주와 생명의 기원 및 근본원리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박진영은 농구 덕후로 유명하다.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편 출연으로 농구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다. 본인의 인생은 음악과 농구로 이루어져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볼 때 주변에 농구할 만한 곳이 있는지, 없다면 마당에 아예 농구 코트를 만들 정도다. 실제로 같은 회사였던 정진운, 김태우와 함께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농구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취미를 살려 NBA 2015-16 파이널 6차전에 스포티비 객원해설로 참가해 전문가 포스를 뽐냈다.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7차전 출연도 확정. NBA 선수들의 주요 스탯을 외우고 있는 것과 더불어 PER와 같은 2차 스탯에 대한 언급, 거기에다가 현지 중계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바로 캐치해서 한국인 시청자에게 말해주는 등, 전문 해설위원 못지않은 언변을 뽐냈다. 이른바 2015-16 시즌 NBA 파이널의 숨은 수혜자.

2016-2017 시즌 NBA 파이널에도 1차전 해설 위원으로 등장했다. NBA 파이널 3경기 연속으로 해설 중이다. 지난 시즌 해설에서 대부분의 NBA 팬들이 호평했지만 그 중에서 나왔던 불만점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편향', '너무 많은 말' 등을 자신도 의식했는지 공정한 해설을 위해 한 달 전부터 카레를 먹지 않았다며 등장하였고, 여전히 풍부한 전문지식과 선수 개개인에 대한 에피소드, 날카로운 경기 흐름 분석으로 농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2017년 1월 7일부터 개최된 KCBL 연예인 농구리그에 예체능 어벤져스팀으로 출전,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서 비교적 준수한 농구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가수들이 소속사와 결별할 때마다 소송을 벌이거나 놔주더라도 구질구질하게 놔주거나, 그게 아니면 아예 탈퇴한 가수들을 디스하는 등,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가족이지만, 다른 데로 넘어가면 무섭게 돌변하는 소속사 사장들이 꽤 많다. 특히 아이돌 계열이 심하다.


하지만 박진영의 경우는 우호적이게 놔주는 걸 넘어서서 자기 회사를 나간 연예인들과 계속해서 친밀하게 잘 지내는 편이다. 아주 단적인 예로 산이가 박진영 랩스타일을 받아들이지 못해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계약해지했지만, 그 이후 식스틴에서 박진영이 당시 후보생들을 심사할 때 심사위원으로 온 것을 보면 음악적 견해가 달랐을 뿐, 서로 나쁜 감정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예외다운 예외는 박지윤 정도지만 이마저도 회사와의 문제였고, 박진영 개인과는 아무 문제 없음을 밝혔다. 실제로 2013년 박진영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었고, 트와이스 미니 2집에선 박지윤의 '소중한 사랑'이 리메이크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박지윤의 라디오에 트와이스가 자주 출연하는 편이다.

특히 이 면모는 원더걸스 멤버들과의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선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한치의 반대도 없이 제일 먼저 축하해주질 않나, 소희가 배우한다고 소속사를 나갈때 배우 활동에 좋은 소속사를 찾아주고 이후 찍은 첫 영화에 JYP 식구들이 발도장을 찍지 않나 이래저래 인성 문제로 말썽 안 일으켰던 사람들과 극소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당히 쿨하게 놔주는 편이다.

특히 원걸에서 아주 오랫동안 활동했던 두 명이 재계약을 안 한다고 했을 때, 박진영은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장문의 인스타를 게재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생각보다 다른 소속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 떠나서 아예 부정적 언플을 하거나, 대놓고 이들을 욕하거나, 그 앞길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악덕 기획사 사장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대인배인 셈. 최근 인생술집에 나왔을 때는 소희의 아버지가 직접 담은 포도주를 박진영에게 선물해줬고, 그걸 인생술집 멤버들과 함께 즐겼다는데, 소희가 현재 JYP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희 본인에게도 아니고 그녀의 부모와 선물을 주고 받는 사이라면 그 관계가 어떤지는 보나마나다. 하필이면 그 때 즈음해서 한 소속사의 찌질한 병크가 터지면서 박진영의 대인배스러움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듀스 101에서 유일하게 붙잡은 소미가 말 그대로 씹어먹으며, 전체 1위를 달성하고 시즌 2에서도 자사 출신 연습생들이 선전하고 아이돌학교에서도 나띠, 이채영, 박지원이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면서 역시 프로듀서 박진영은 대단하다라고 평가할 정도.


JYP 엔터테인먼트 특유의 '가족같은 분위기' 또한 박진영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PM,원더걸스 등은 박진영에게 그냥 진영이 형,오빠 라고 부르며, 10대와 20대초반인 트와이스가 예능에 나와서 공기반 소리반 드립을 치는걸 보면 회사 내에서 박진영의 비수직적인 위치를 알 수 있다.

그의 안목 역시 나름 재평가 받았는데 TWICE 선발전에서 모모를 뽑았을 때, 엄청난 비난과 반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모모가 트와이스의 퍼포먼스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예능에서도 어눌하면서도 애교있는 모모의 캐릭터가 터짐으로 인해 이 시점에서는 결국 신의 한 수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믹스나인에서 신류진이 프로듀스의 소미처럼 믹스나인을 씹어먹으며 또 재평가 받고 있다. 현재 믹스나인에 신류진을 출연시킨 것이 신의 한 수라는 평이있다.

또한 현재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병기씨는 인터뷰에서 JYP 재직 시절 A&R로서 생각하는 박진영 프로듀서의 장점은 "자기 곡을 객관화하고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었다. 어떤 곡을 써와서 모니터링할 때 별로라는 의견이 나오면 곡을 다시 쓰러 가는 등 박진영 개인으로 봐도 그 동안 알려진 외골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원도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걸 보면 전 직원과도 잘 지내는듯.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팬으로 유명하다. 잭슨의 1집 Off The Wall이 자신의 첫 음악의 출발점이라고 할 정도이다.

BPM이 120을 넘는 음악을 정말 싫어한다. 이유는 자신은 미국식 흑인 소울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계통 음악들은 BPM이 느리기 때문. 무도 가요제에서도 흥겹고 빠른 음악을 선호하는 유재석이 BPM을 최소 120은 넘겨야한다니까 질색팔색을 했다. 그래서 130처럼 들리는 110짜리 음악을 만들정도. 그런것치고는 《살아있네》가 155 BPM이라 의문을 자아냈는데 살아 있네로 컴백할때 출연한 주간아이돌에서 120을 넘겨도 자신의 흥에 맞는 음악이면 문제 없다고 답했다. 155정도의 높은 BPM이면 절반인 77.5BPM으로 그루브를 타면 되기 때문에 그런 듯. 사실 흑인 소울도 조금씩 BPM이 올라오긴 했지만... 또한 EDM을 극도로 싫어한다. 일렉트로닉 음악 자체는 신스팝이나 일렉트로-팝의 형태로 잘 구사하지만 빌드-드랍으로 된 EDM 형태의 곡은 선보인 적이 없다. 

미국 슈퍼히어로물 덕후이며 특히 극렬 원더우먼빠이다. 그래서 자기가 걸그룹을 만들때 이름부터 원더걸스라고 지었으며 텔미의 안무는 아예 원더우먼의 동작(정확히는 팔로 총알을 막아내는 동작)에서 그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고양이상을 좋아한다. 박지윤(멀티 엔터테이너), 안소희, 왕페이페이가 그의 취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주먹을 쥐고 턱을 받치는 자세를 정말 좋아한다.

활동 초기부터 파격적인 의상을 입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위의 화보 촬영 중 입었던 그 유명한 비닐바지 패션은 이후 박진영 본인도 쪽팔려할 정도로 예능 프로에서 박진영과 관련된 영원한 흑역사이자 개그 아이템으로 남게 되었다. 여담으로 유재석은 이걸 비닐하우스라고 언급했다. 더군다나 당시에 적혀있던 문장은 '나의 노래는 타이슨의 주먹보다 강하다!'였다.


방송에서 밝히길 "소원이 있다면 인터넷에 저 사진 하나만 없어졌으면..."이라고...
개그 콘서트의 슈퍼스타 KBS에서는 아예 전신을 비닐로 입고 나온다. 결국 2016년 4월에 발표한 신곡 '살아있네'의 뮤직비디오에서 그 비닐바지를 다시 입고 나오면서 자폭했다.

이 떡밥은 다른 연예인들이 주로 코미디 분야에서 희화하는데 많이 써먹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