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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초폴리는 승부조작이 아니었다



(전략)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승부 조작’으로 알고 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 리그가 하향세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만약 승부 조작이었다면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승부 조작을 위해 뛴 축구선수들이 범인일 것이다. 칼초폴리는 이런 유형의 사건이 아니었다. 축구 선수들의 잘못은 전혀 없었다. (중략) 사건의 진실은 알고 보면 더 심각하다. (중략) 칼초폴리는 승부 조작을 위해 심판을 매수한 것 같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중략)
루치아노 모지는 그의 인맥을 다방면으로 이용했다. 예컨대 심판 배정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심판 지명에 입김을 가하는가 하면, 유벤투스에 불리한 판정을 한 심판에 응징을 요구하기도 했다. 스포츠 기자들에는 방송 중에 유벤투스에 비우호적인 판정을 한 심판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심지어 스포츠 방송에서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기자에게는 루치아노 모지의 사익을 반영하는 글을 쓰도록 관여하기도 했다. 친분이 있는 경찰들에는 팀의 재무제표를 조작하기 위해 임의로 선수 몸값을 올리는 등에 대한 갑작스런 세무조사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면 언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아들 알레산드로가 운영하는 축구선수 매니지먼트 에이전시인 GEA World를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축구시장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려는 선수들과 가격 협상을 하는 것이 그 예이다. 루치아노 모지는 이러한 인맥을 이용하기 위해 상대방을 식사에 초대해 고가의 선물을 하곤 했다. 혹은 축구경기 VIP관람석 티켓이나 유명 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 유벤투스 소속 선수들과 비행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주기도 했다.
(중략)
칼초폴리 사건 이전에도 축구계의 시스템은 전적으로 부패했었다. 몇몇의 감독들은 권력과 인맥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속 구단의 승리를 더 용이하게 하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개인자산을 창출하고,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협회를 운영했다. 루치아노를 비롯한 대다수는 남들처럼 지인에게 부탁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문제는 심판이나 경찰과 같은 공무원에게 하는 부탁은 청탁이며,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 불법 행위란 것이다.

<알베르토 몬디, "칼초폴리는 승부조작이 아니었다">



Calciopoli. 2006년 이탈리아 축구계를 뒤엎은 스캔들. ‘칼치오폴리’라고 쓰는 경우도 있지만 ‘칼초폴리’가 맞는 표기다. 단어 자체는 90년대 이탈리아 제1공화국의 부정부패를 드러낸 '탄젠토폴리(Tangentopoli) 스캔들'에서 유래하였다. ‘칼초’(calcio)는 이탈리아어로 축구를 뜻한다. 즉, 칼초폴리라는 말을 해석하면 ‘축구 게이트’가 되는 셈.

전 유벤투스 FC의 단장인 루치아노 모지가 재직 당시 축구계 및 언론계 주요 인사들과의 커넥션을 통해 심판 배정 압력, 불리한 판정을 한 심판을 공격하기 위한 언론 플레이, 세무조사 회피를 위한 수사기관 로비, 이적협상 불법 개입 등 범죄를 행하거나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레지나 칼초, AC 밀란, ACF 피오렌티나, SS 라치오 등 구단의 수뇌부 인물들도 이러한 커넥션에 연루된 혐의로 입건되었다. 2015년 루치아노 모지에 대한 대법원 최종심에서 공소시효 만료로 실형은 부여되지 않았으나 혐의 사실은 부정되지 않아 사실상 유죄인 것으로 결론났다.

국내에는 승부조작 그리고 심판 매수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인 승부조작이나 심판 매수와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대법원 최종 판결문에서 쓰인 표현은 "범죄 공모죄 및 스포츠 부정 (il reato di associazione per delinquere, sia la frode sportiva)"이다. 다시 말해서 총체적 리그농단,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발단

1998년 7월 AS로마의 감독이었던 즈데넥 제만이 유벤투스의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제기하여 이탈리아 검찰이 이에 대해 조사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유벤투스 금지약물 복용 의혹 문서에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 검찰은 금지약물 사용 여부에 대한 추가 조사를 위해서 감청을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벤투스의 단장 루치아노 모지가 이탈리아 축구협회 간부에게 유벤투스 경기에 배정된 심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2006년 2월 데르비 디탈리아 직후 루이스 피구 및 마시모 모라티가 루치아노 모지와 심판진과의 관계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2006년 5월 텔레콤 이탈리아는 모지와 피에르루이지 파이레토 UEFA 심판배정 부위원장과의 통화 등 도청 결과 다수를 검찰에 제출하였으나, 당시 토리노 검찰청의 수석검사인 마탈레나는 도청내용에 대해 "단순 친분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 외에 범죄의 증거로 볼수 없다"며 기소를 하지 않고 FIGC(Federazione Italiana Giuoco Calcio, 이탈리아 축구연맹)로 자료를 이관하였다. 당시 녹취 내용을 보면, 모지가 "누가 그딴 심판을 보낸 거야?"라고 하자 베르가모가 "그는 최고의 심판이오."라고 반박하는 등 배정에 대해 둘이 공모했다는 정황은 없었다.

그런데 진짜 사건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나폴리 검찰청에서 도청자료를 토대로 모지가 소유한 에이전시 회사인 GEA월드의 에이전트 계약시의 불법행위 정황을 포착하였다. 이후 일련의 조사과정에서 스테파노 팔라치 검사는 4개 구단의 6명의 인사들이 "심판배정관여 및 판정이득을 얻었다"는 혐의로 기소하였다.

이 중 SS 라치오의 구단주 클라우디오 로티토에 대해 "FIGC 전임 회장인 프랑코 카라로와의 관계"가 언급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FIGC는 전격적인 조사를 표방하고 관련 구단 및 관계자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음모론

칼초폴리에 대한 아래와 같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칼초폴리와 연루되어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는 주심 마시모 데 산티스는 인테르가 주도한 도청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텔레콤 이탈리아 보안 담당 줄리아노 타바롤리는 인테르의 의뢰에 따라 도청이 진행되었다고 증언했다.

칼초폴리 당시 텔레콤 이탈리아 회장은 인테르 이사인 트론케티 프로베라였다. 05-06 시즌 스쿠데토를 인테르로 넘긴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 FIGC 회장이었던 귀도 로시인데, 그는 과거 인테르의 중역이었고 FIGC의 일부 임원들은 이에 이견을 표했다. 더구나 이 결정 이후 귀도 로시는 텔레콤 이탈리아 회장으로 취임한다.

유벤투스에서 인테르로 이적한 크리스티안 비에리는 자신도 도청 대상이었다는 것에 분노하여, 자기 연봉을 인테르와 텔레콤 이탈리아가 7:3으로 부담한다는 계약 문서를 공개했다. 도청 이유는 칼초폴리와는 무관한 사생활 감시라지만, 중요한 것은 텔레콤 이탈리아가 인테르와 재정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에 있고 구단의 요청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2011년 7월 칼초폴리 관련 조사를 책임졌던 스테파노 팔라치 검사는 아래와 같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항 1 위반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행위에 관한 조항. 심판진과의 부적절한 접촉이 이에 해당한다.): Campedelli (키에보), Cellino (칼리아리), Corsi (엠폴리), Foschi (팔레르모), Foti (레지나), Gasparin (비첸차), Governato (브레시아), Meani (밀란), Moratti (인테르), Spalletti (우디네세)
조항 6 위반 (승부조작 및 승부조작 시도에 관한 조항): Facchetti (인테르), Meani (밀란), Spinelli (리보르노)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2011년 11월 나폴리에서 열린 칼초폴리 재판에서 검사장을 맡은 Giandomenico Lepore에 의해 다시 부정되었다. 그는 최초 팔라치 검사가 2006년 칼초폴리 당시 인테르를 해당 사건에 연관시키지 않았던 근거를 다시 내세웠으며, 인테르에 관련한 통화 기록 내용은 형법과는 무관하고 스포츠 법원의 소관임을 밝혔다. 한편 전임 칼초폴리건 PM이었던 Giuseppe Narducci는 "모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도 유죄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통화 내용들은 모지의 통화에 비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칼초폴리 당시로부터 계속되는 조사 결과는 이렇듯 일관성 있게 인테르의 손을 들어줬으며, 2020년 현재까지 인테르도 칼초폴리에 연루되었므로 합당한 처벌을 받고 2005-06 시즌의 스쿠데토를 반납해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음모론 제시는 고인이 된 지아친토 파케티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으나, 2010년 TV쇼에서 음모론을 제기했던 모지를 파케티의 아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에 대해 밀라노 지법은 2015년 7월 재판에서 모지가 무죄라 판결했다. 2010년 법정에 제출된 파케티의 일지에서는 밀란과 유벤투스가 승부조작에 관여하고 있는 이탈리아 축구계의 자정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메모가 있었으며, 이는 법정 증거로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