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한 '박대성'과 그에 관계된 여러 사건을 가리키는 말.
다음 아고라 논객 활동
박대성은 '미네르바' 라는 필명으로 2007년 10월 2일부터 2008년 11월 무렵까지 약 80개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 남겼다. 이 글들은 누적 조회수 730만여 건, 댓글 3만 3천여 개, 답변글 2천여 개, 찬성 9만여 개, 반대 2천여 개의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의 몰락을 예언한 게 들어맞은 게 계기가 되어 '미네르바' 의 명성은 매우 널리 퍼졌는데 몇몇 주류 언론이나 방송 3사에서도 그 필명이 언급되고 특집 방송까지 제작되는 신드롬이 퍼지게 된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 등의 별명도 가지게 된다. 글을 게재할 당시 외국의 금융 기관에서 일했다고 스스로를 칭하며 나이도 속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주로 반MB정부, 반여권 정서를 기조로 한국 경제 위기론을 역설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 공문을 위조하여 허위 정보를 유포하였다(?)는 혐의로 기소가 되었다. 사실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린 네티즌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며 체포된 적은 거의 처음이다 보니, 당시 여론은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는 독재 정권의 부활이다'vs'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기소해야 된다'로 서로 뒤엉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당시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글은 "정부,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이라는 것으로 검찰은 박대성의 글로 20억 달러의 방어비용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여담으로 체포 후 검찰 측에서 "나이 30대, 전문대 졸, 무직(백수)"라고 간략하게 신상을 공개했는데, 오히려 당시 전국적으로 어그로를 끌고 있었던 이 분(S대 법대, 미국 N대 경제학 석사 출신)을 비판하는 소재가 되고말아, 사람들이 "중구삭금", "중구난방"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체포 후 박대성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익에서는 자신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좌익으로 예상되는 어떤 사람들은 면회를 와서 "당신이 자살하면 MB정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열사가 되어달라"며 자살을 종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대성은 자긴 좌도 우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진행된 공판 1심에서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공익을 해칠 목적도 없었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이후 2010년 12월에는 박대성을 기소한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상의 인터넷 허위글(허위통신)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국가 상대로 1억 소송을 시작했다. 거기다가 애초에 박대성을 처벌한 그 법률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처벌하는 법률이 아니었다. 2013년 소송은 기각되었다.
박대성이 석방된 후 공개 토론회에서 실제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의외로 말이 중언부언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는 등 오프라인에서는 그렇게 매너가 좋거나 논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하였던 박찬종 변호인에 따르면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부당하게 억압당하며 심한 체중 감소, 건강 악화를 겪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박대성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모든 관계를 끊은 채 한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우울증도 발병하여 현재 치료를 받고 있으나 이미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법정에서 흐느껴 울면서 자신은 무죄이니 선처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법정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법정인데도 자기가 무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미 너무 큰 상처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경도의 착란이나 피해망상 증상이 있었던 듯하다.
가짜 미네르바 논란
2008년 12월 2일 오후 5시께 파이낸셜 뉴스의 곽인찬 논설 위원이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패러디 칼럼을 올리면서 곽인찬 위원이 미네르바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으나 곽인찬 위원이 나중에 스스로 패러디였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여담으로 미네르바가 인기를 한창 끌 때 허경영은 미네르바는 50대의 금융엘리트이고 자신이 정체를 안다라고 주장했다가 박대성이 체포된 후 데꿀멍 모드가 되었다.
한편 신동아에서는 미네르바의 실체를 밝힌다는 일련의 기사에서 미네르바를 자인한 어떤 사람의 글을 실었고 그 정체는 인터뷰 담당자를 포함한 7인의 금융엘리트그룹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 달 뒤 박대성이 체포되었고 다음 달 신동아에서 주장하는 '진짜 미네르바'는 박대성이 가짜라는 주장을 실었다.
진상은 신동아에 나온 미네르바 자체가 대북사업가이자 한국전쟁 당시 첩보원을 자처하는 어떤 브로커가 개입한 가짜였고 이 일로 신동아는 동아일보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래 최대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신동아에서 미네르바를 자처한 K씨는 진상 공개 때 대북사업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2011년에는 신동아의 편집장 등 기자들까지 가세해서 자신을 폭행 및 협박했다고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외환위기 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해서 미안하다'는 등 50대 경제 엘리트를 자처해왔던 인터넷상의 모습과 전문대 출신 30세 무직자의 모습과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제로 박대성이 구속되고 난 뒤에도 박대성을 "가짜 미네르바"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인터넷상의 자기 정체성 주장이 어디까지 허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박대성은 2010년 11월 말, 수원 지방 법원 성남지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다가 박대성을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며 신상이 유포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신을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2014년 6월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70만원,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