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경제불황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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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경제불황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


2017. 8. 1.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 Crisis.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CDO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2007년에 발생한 미국역사상 최대, 최악의 금융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불황도 모두 이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중 비우량 대출자(Prime이 '우량 고객'이다)를 뜻하며, Mortgage는 주택 담보 대출을 뜻한다.



발생 과정

연준의 저금리 정책

2001년에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약자 Fed. 미국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금융 정책 기구)의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투자자는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투자처로서 미국 국채를 이용해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FRB, 특히 그린스펀은 그것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고, 결국 한 연설자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위기를 시작할 한 마디를 한다.

"연방 공개 시장 위원회는 충분한 경제적 성장을 촉진할 필요가 있는 이상, 매우 협조적인/조절적인정책을 고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 말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결국 이 말은 그린스펀이 미국 국채에 대한 정책을 바꿀 것을 시사한 것이었고 쉽게 말해서 이런 거다.

"이제는 여러분이 미국 국채로 돈 따먹는 거를 못 봐주니까, 다른 데로 가시오."


부채담보부증권

이 발언 직후,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매니저들은 새로운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은 CDO(부채담보부증권)이었는데, 당시 CDO는 40% 정도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었고, 90% 이상의 채무자들은 성실하게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CDO는 매우 이상적인 투자처였다. 애초에 집을 담보로 삼는 모기지는 갚지 않으면 곧바로 노숙자가 되기에 모기지를 갚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CDO는 간단하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주택담보대출을 모아서 만든 증권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대출금을 은행에 갚으면, 은행은 투자자들에게 원금에서 이자를 붙여서 지급했다. 은행은 더욱 많은 자금을 유치하고, 투자자들은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프라임(Prime)'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확실한 수입, 확실한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주택담보대출로서, 회수율이 매우 높지만, 새로운 고객은 매우 적은 타입의 대출 방식이었다.

잠시 미국의 대출등급을 이야기 하자면

1. 위에서 말한 Prime 등급 (우량)

2. Prime보다는 못하지만, 다시 말해 채무불이행 위험도가 높지만 어느 정도 미래가 보이고 돈을 떼먹지 않을 것 같은 Alt(alternative)-A 등급

3. 아무래도 떼어먹힐 위험이 매우 높은 "서브프라임"(Sub Prime) 등급(비우량)

등급이 낮을수록 파산위험이 커지나, 대신 높은 이율을 적용한다.

물론 프라임 대출을 모아 만든 CDO는 매우 견실했고, 꾸준한 수입과 안정성을 동시에 약속하고 있었다...더 이상 프라임 대출을 할 만한 사람이 고갈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앙의 시작

2003년경이 되자, 거의 모든 프라임 대출 대상자는 이미 모기지를 쓰고 있거나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은행은 새로운 CDO를 새로운 투자자에게 발급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이 필요했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은 프라임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대출인 'Sub Prime' 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고...모든 재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서브프라임 대출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을 때, 은행들은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증명, 자산 증명)를 조금 완화해, "Stat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선언, 자산 증명)로 완화했다가, Stated Income, Stated Assets(수입 선언, 자산 선언)로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새 고객은 자신의 금융재산을 증명할 엄청난 양의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충분한 수입이 있다고 서류에 명시하기만 하면 되었고, 은행은 고객의 재산목록을 조사하지 않고서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과 신흥국가들의 자금들마저 CDO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이제는 완화된 기준으로도 부족하게 되었다. 더욱 많은 모기지가 필요했다. 엄청난 양의! 그러자 새로운 모기지가 절실히 필요했던 은행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그 여파는 생각지도 않고…. 마침내 No Income, No Asset(NINA)대출이 시장에 나왔다. 이 대출 상품은 고객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냥 신청만 하면 재산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은행은 대출을 해주었다. 물론 은행이 미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배짱을 부려댄 것은 아니었다. 당시 부시 정권의 한 가구 한 주택의 기조 하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었고 은행들도 계속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한 가구 한 주택의 기조 때문에 주택시장에 붐이 일어서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브 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이 집을 사는 데에 그 사는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집값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 집값의 100%까지 빌려준다 하더라도 집값이 오른다면 담보가치가 더 높은 것이므로 은행들은 미친듯이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이 얼마나 대출심사를 대충 했는지 보여주는 일화 중에 기절초풍할 게 하나 있다. 한창 NINA 대출이 성행할 때, 오하이오에서는 23명의 죽은 사람이 대출을 받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그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인데, 은행은 상대방이 제시하는 본인인지, 그리고 차후에 확인이나 인증도 하지 않은것이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은행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CDO 자체가 워낙 새로운 투자법이라는 문제였다. 아직 깊게 연구되지 않은 투자법이었고, 은행원들이 가지고 있던 컴퓨터 모델은 모두 오래된 자료에 기초한 것이었다. 즉, Prime 시절에 모은 데이터에 근거해 작성되었다.

당연히 그런 모델이 서브프라임을 이용한 CDO에는 맞지 않았지만, 은행원은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계속 믿었다. 시뮬레이션은 CDO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근거가 되었고, 실제로도 서브프라임의 성적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계층의 고객들도 프라임 계층같이 그럭저럭 돈을 갚아나가서, 프라임만큼은 아니지만 60~80%의 서브프라임 고객들은 돈을 성실히 갚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1차 기초자산인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MBS를 기초자산으로 CDO-0를 만들고, CDO-0과 CDO-0의 기초자산인 MBS를 기초로 CDO-1을, 그리고 이런 식으로 CDO-2, CDO-3........ 같이 기초자산의 단계가 뒤엉킨 파생상품의 위험 분석,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대한 위험 관리가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할 지경에 다다랐다는 걸 말이다.


전조

그러나 2006년,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2006년에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거품 규모는 약 2조 달러였던 것으로 추산된다. 언제, 어떻게 정확히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주택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을 차차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결국 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당시 서브프라임 계층의 사람들은 만약 일이 없다면, 집을 팔아서 돈을 갚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빚을 갚았다. 원래 미국의 담보시스템은, 대출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해당 부동산만 포기하면 된다. 은행이 고객의 다른 자산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므로 어느 정도는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서브프라임 계층의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서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었을 확률도 높다. 거품이 언제 빠지나 불안불안한 시점에 수상쩍은 매물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파산

그러나 거품이 꺼지고 나자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고, 다수의 서브프라임 고객이 디폴트를 선언했다. 거품이 꺼지자 경제도 서서히 불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자리도 줄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파산위기에 처했다. 애초에 자산시장의 특성이 그렇다. 갑자기 매물이 늘어나면 매도세가 급물살을 타며 매물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미친듯이 꺼진다. 때문에 반대의 경우도 맞지만 이미 반대의 경우가 끝나고 매물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모든 일이 도미노처럼 진행되었다. 즉, 
서브프라임 계층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다. 또는 일부러 안 갚게 되었다.
-> CDO의 수익률이 떨어지다 못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서브프라임에 투자되었던 수조 달러의 돈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투자자들이 다급히 자신들의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 CDO들은 우량자산에서 부실자산으로 변모, 대부분의 자산을 CDO로 가지고 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은 공황에 빠졌다.

마침내 2008년 9월, 다량의 CDO를 가지고 있던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점으로, 미국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던 몇몇 나라는 아예 경제가 자빠지기도 하면서 전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된다.


근본적인 이유

빈부격차의 심화

라구람 라잔은 폴트라인에서 빈부격차의 심화가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한 바 있다.

이 빈부격차의 원인에 관해서 레이건 시절의 규제 완화 등 여러 원인을 거론한 바 있으나 가장 큰 것은 미국의 교육 불평등 내지는 Skill-biased technical change라고 거론한 바 있다.

이에 더해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치적 차원에서 부동산 대출을 쉽게 해주는 식의 땜질 처방에만 의존한게 문제였다고 평한다.

빌 클린턴 정부의 '서민용 주택 확대' 정책과 부시 정부의 '한 가정 한 집'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내 2008년 거품 붕괴 때까지 계속됐다. 확연한 노선 차이도 아랑곳없이 똑같은 정책을 이름만 다르게 붙여 두 당의 지지 하에 시행해왔던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처럼 양 당이 아무 불협화음 없이 추진한 정책은 주택 정책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행태는 근본적으로 빈부격차에서 촉발된 것이다. 금융규제법처럼 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근시안적이다. 이 문제에 한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둘 다 공범이라고 책에서 거론한 바 있다.

국제적 불균형

이 외에도 일본, 독일, 나아가 한국, 중국 등 신흥국들이 수출 증대를 꾀하면서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오랫동안 흑자국이 된 것 역시 문제로 본 바 있다. 이러한 국제적 문제는 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더 심화되었는데, 한국,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이 오랫동안 달러를 비축해두고 자본을 미국에 과잉 공급하게 되면서 미국 경제의 가해자가 되었다고 한 바 있다.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라구람 라잔은 이러한 국가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지나치게 흑자를 보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자국 내의 내수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닷컴 버블과 연준의 잘못된 통화정책

보통 자본이 유입되는 것이 이론적으로 볼 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특정 분야로 지나치게 집중되어 해당국의 경제를 비교적 교란하지 않고 그것이 기술발전이나 산업화 등에 쓰인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경제성장에 기여하므로 그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우, 유입된 해외 자본이 부동산 등의 분야에만 몰려서 자국 경제를 교란한 바 있다.

그 원인으로 거론된 것이 닷컴 버블이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닷컴 버블로 인해 제조업, 서비스업 시장의 이자율이 하락해 해당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연준의 금리 하락에 따라 시장에 풀린 돈이 고스란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금리 하락 시 다시 해당 시장이 투자를 늘리게 될거라는 것과 90~2000년대 내내 시중에 돈을 풀다가 금리를 재인상 하기 시작한 시점을 잘못잡은 연준, 마지막으로 그러한 위험을 무시하고 부동산 시장 광풍을 즐긴 금융계 역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금융 시장의 시스템

거기에 더해 금융기관의 잘못된 인센티브와 시스템 역시 지적하고 있다. 가령, 금융기관의 경우 지나치게 고수익 고위험 수익을 추구하도록 보수구조가 짜여졌으며, 투명성이나 기타 구조적 요인 역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라잔 교수는 그렇다고 금융시장을 정부의 힘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고 보다 시장 자유를 유지하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특권이나 보조금 폐지, 온건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해서 책임성 문제도 들 수 있다. 이는 정확히는 금융시장 상품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각종 금융상품은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1. 사람들이 부동산 대출을 위해서 자금을 빌린다. 

원칙적으로 여기서만 끝난다면 은행이 대출 상환 여부 감시에 책임이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아래와 같은 파생상품이 일을 키웠다.
2. 은행 등 금융사는 이런 대출자금을 가지고 얻은 담보나 채권을 근거로 증권을 발행한다.(MBS ; Mortgage Backed Securities)
3. MBS는 위험도 등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그리고 금융사는 이런 MBS를 수익, 위험 등등 취향에 따라 선별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렇게 대출채권 등등으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를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라 한다. 

4. 그리고 그런 CDO를 근거로 또 채권, 즉 파생상품이 발행된다. 그 중에는 아예 대놓고 위험만 떼어서 거래하는 CDS라는 상품도 있다. 
-> 즉, 부동산 담보 대출과 관해서 특정인의 채권채무관계와 엮였고 그 채무이행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관련 금융사들은 여럿이 된다. 
그런데 원래 책임자가 여럿이면 대체로 그런 의무 수행은 남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방관하는 책임성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부동산 대부자금 채무 이행에 대해서도 채권자인 금융사들은 책임자가 여럿이니 방관하게 된다. 
더군다나, 많은 금융사들은 기업이나 가계에도 대출을 함은 물론 자기들끼리도 서로 대출을 해주고 있어 서로 얽혀있으므로 어느 한 쪽이 터지면 공동으로 피해를 본다. 즉, 각종 파생상품은 개인의 위험을 제거하는데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구조적 위험은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고려는 이런 금융시장의 기술적 구조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고. 


결론

라구람 라잔 교수는 시장과 정부 양 측 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모든 문제의 흑막은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데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확립하자는 정공법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와 사회가 합심하여 교육 개혁을 이룩하여 빈부 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하며, 중국, 한국, 일본, 독일 같은 나라들, 특히 중국의 경우 이제는 경제규모도 크니만큼 더 이상 미국 수요에 의존하기보다 어느 정도 내수를 키워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기타

미 하원에서 공화당은 구제 금융을 부결시켰을 때 시카고 대학교를 비롯해 6개 대학의 교수진들은 구제 금융을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이 외에도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배로 교수는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자 재정을 반대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를 진지하게 따르는 사람들은 확실히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걸 본다면 신자유주의 전체의 도덕적 해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 더불어 간혹 엉뚱한 사람이 신자유주의자라 오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런 학자들이나 평소 신념이 투철한 사람들 외에 비교적 신념이 덜 투철하고 대세에 영합한 기회주의자들이 재계에 적지 않았다. 가령 서브프라임 사태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정작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조사도 똑바로 안 하고 빌려주는 등 삽질을 알아서 한 주제에 신자유주의 원리대로라면 파산하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연명했다.

그런데 간혹 일부 엉뚱한 인물들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까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가령 맨큐는 비록 공화당 시절에 부시 밑에서 벼슬을 얻었지만 연방 정부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촉발에 관여한 정황은 없었으며 정작 맨큐 본인은 케인즈를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는 새케인지언이다. 그리고 이명박대통령이 신자유주의자라고 까이는데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보다는 4대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관리정책에 가깝다. 오히려 김대중대통령이 신자유주의자이다. 게다가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삽질이라도 해야한다는 판단하에 시행했던 사업이니만큼 기조 자체는 케인지언에 가깝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단어가 '친재벌적'이라는 뜻과 흔히 동일시 되곤해서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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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이 사건에 대해 "금융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니 일반인들이 무지해졌고, 그에 따라 이런 위기도 발생했다." 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양반도 저서가 전형적으로 주택거품으로 돈벌던 인간이고 빚을 계열사 파산으로 무마하려고 하는 등 영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이야기로 신용불량자에게 대출을해 준다는 뉴스가 있어서 경제위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후폭풍

지금 현재 진행중인 경제 문제들의 근본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주택가치가 폭락을 겪었으며, 이로인해 미국경제가 개판이 되어가자 달러화의 가치가 급락, 미국 경제가 전체적으로 불경기가 되면서 미국을 상대로 무역을 해 큰 이익을 얻던 국가들 또한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개요에서 설명했듯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의 배경이 되었다.

세계적 불황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은 경제 패러다임에 또 한 번 큰 충격을 가한 변환점이 된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다 OK라는 신자유주의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 은행은 잘 나갈 때는 "국가 규제 따위는 다 없어도 된다. 그런 거 없이도 시장은 잘 굴러간다.(laissez faire)"라고 주장하더니만, 정작 서브프라임 폭탄이 터지자 "우리 망하면 경제도 다 망하니까 국회님 돈 좀 지원해주세요!"하며 데꿀멍. 그런데 이렇게 단정지을수도 없는것이, 정부는 당시 꾸준히 돈을 풀면 풀었지 시장에 방임하진 않았다. 이 주장은 마치 벽난로에 장작을 가득 채워놓고 탄게 문제지! 하고 성낸격, 이에대해 국내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사설을 통해 강한 비판을 하곤했다. 

유명 철학가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자신의 저서인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이러한 행태에 대해, 호황일때는 자본의 사회화와 규제를 미친듯이 까며 저항하던 자본가들이 막상 위기에 닥치자 그토록 질색을 하던 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사회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비꼬았다. 뭐 애초에 자본가들은 이익집단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들이 무조건 시장친화적이라면 툭하면 수입품 때문에 우리 산업 다 망해요 징징 관세 올려주세요 이런 말들을 할 리가 없었겠지. 이건 프리드먼까지 갈 필요도 없고 애덤 스미스부터가 지적한 내용이다.

근본적 원인은 2000년대 초반의 9.11과 닷컴버블의 붕괴로 인한 통화정책과 정부정책의 실패, 그리고 그 뒤의 시장의 붕괴까지 초래하는 상황을 본다면,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상황이 비슷하고 실제로 작은 공황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나, 수요와 공급의 조절 실패가 아닌 부동산의 무분별한 대출로 말미암은 사태라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은 경제대공황에 비하면 매우 약한 편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각국의 여러 금융이나 건축 회사가 박살나거나 큰 타격을 입고 세계 경제 불황의 원인이기도 한 만큼 절대적인 사건의 타격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대공황처럼 세계 단위로 모두 다 함께 쫄딱 망한건 아니니 말이다. 

그 외에도 대공황 때는 대통령부터 펀더멘털만 외치다가 결국 대통령이 루스벨트로 교체된 이후에야 제대로 대응한 것과는 달리 이미 비슷한 사태를 한번 겪어봐서 초기 대응도 대공황에 비해 신속했으며, 1차대전 후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오직 미국에만 집중되었던 대공황 시기와는 달리 상당한 경제 호황 이후에 처음부터 전 세계에 어느정도 충격을 분산시키면서 발생했다는 점 등 변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타격이 줄어서 3차 대전으로 안 갔다는 평도 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금융 기업은 미국 정부에서 준 어마어마한 수준의 지원금으로 임원들 보너스를 줬다고 한다. 그리하여 일어난 것이 월가 점령 시위. 그러나 별로 변한 것도 없고 피해는 보통사람들이 당하고 금융엘리트들과 부자들은 몇명의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냥 좀 힘들었군" 이정도로 넘어갔다.


애초에 이 사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투자 모델을 소위 최고급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거대은행에서 어떤 의문도 없이 받아들인 시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작자들이 평소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타인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서 혼자서 생존하도록 노력하라고 하던지, 네가 망하는 것은 100% 너의 책임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례.

이 외에도 다들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다른 식으로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 학파는 새케인즈 학파 등이 주시하는 금융부문을 다소 경시하고 실물부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는 금융부문이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친 반면, 실물부문에서는 경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바 있다. 따라서 금융부문에 대해 이전보다 경제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게 되었고 특히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다. 

거기에 더해 화폐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비상식적 통화정책이나 금융가속도효과 등이 재조명되었다는 점 역시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이다. 

또 한가지 후폭풍으로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공무원직의 인식도 180도로 바뀌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공무원직이 그리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아니었다. 대놓고 "나는 공무원 따위는 안해"라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다했다. 그리고 공무원으로 뽑히는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2006년 전에는 회사들도 버블을 타고 번창하고 이런 회사들에 취직하면 공무원직보다 수입이 더 좋았었다. 하지만 버블이 터지고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직원을 해고해서 지출을 줄여서 어떻게는 버티려고 하면서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고용할수있는 회사는 없었다. 그래서 어디서 구직을 하면 한 자리에 몇백명씩이 지원을 하는 현상이 일어닜다.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느냐 하면, 입문단계의 프로그래머를 구하는데 지원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그 분야에서 매니저급 경험자였다. 워낙 일자리가 없으니, 자기가 해고되기 전의 월급의 반도 못받는 일이라도 닥치고 해야할 지경이었고, 그나마도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 구직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2006년 후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너도나도 월급은 적지만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2017년 현재에도 공무원 시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경쟁률도 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