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는 지구상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며 모기와 함께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로 알려진 곤충계의 좀비 그 자체. 일단 바퀴는 머리가 없어도 1주는 거뜬히 버틴다.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심지어는 나데즈다란 이름의 러시아 바퀴벌레는 최초로 지구 밖에서 임신을 한 종으로 기록되었다. 급격한 온도변화, 우주방사능, 무중력이라는 악조건에서도 새끼를 낳는 데 성공해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모성애·부성애도 강하다. 새끼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행인 곤충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알집으로 알들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그 알집을 항상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데다가 알과 새끼를 키워주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새끼에게 젖먹이듯 자기의 체액을 빨게 해 주며 육아를 하는 종류(갑옷바퀴)도 있는 등 대단한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역이용하여 독 먹이제로 살충하면 바퀴들을 초토화해 버릴 수 있다. 어떤 종들은 위험을 느끼면 모체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알집을 배출해내는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집바퀴 종류는 보통 거의 모든 유기물질을 소화시킬 수 있다. 비누까지도 바퀴에게는 식품에 해당된다. 사람의 각질, 손톱, 눈썹까지 갉아 먹을 수 있다. 다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지 선호하진 않으며 대부분의 곤충들처럼 바퀴벌레 역시 녹말과 당분을 선호한다. 머리카락, 손톱, 비누는 아주 먹을 것이 없을 때 먹는 정도이다. 사람으로 치면 나무껍질에 풀뿌리 정도. 인간처럼 입맛을 가릴 처지는 아니므로 사람 몸에 붙은 눈썹이나 손톱을 갉아 먹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도, 땅바닥에 떨어진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잘 주워 먹는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한 소식가이다.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메이저한 종류인 미국 집바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2~3주일, 물만 마시고도 90일을 버틸 수 있다. 바퀴벌레의 수명은 180일가량으로 사람이 100년만 산다고 가정했을 때 50년을 물만 마시고 살 수 있다는 소리. 덕분에 해외 전파에 유리해서, 무역으로 인해 해충이 타국으로 번지는 사례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을 정도. 미국바퀴의 고향은 아프리카인데, 노예 무역선을 타고 미국으로 진출해 세계 바퀴계의 큰손이 되었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 중 전 세계에 공급된 미군 물자는 바퀴벌레가 전 세계에 퍼지는 원인이 되었는데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거대한 이질바퀴(미국바퀴)가 동양권으로 진출해 서식지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해가고 있다. 한국 역시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량의 미군 물자가 흘러들어 왔고 이질바퀴 역시 유입되어 지금까지 식품 관계 업자와 다른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세스코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바퀴는 미국산 이질바퀴가 아니라 독일바퀴(가장 많다)와 집바퀴(일본바퀴, 독일바퀴 다음으로 많다)다.
집바퀴(일본바퀴), 독일바퀴와 이질바퀴(미국바퀴) 세 종류가 주로 보이지만 바퀴벌레도 종류가 엄청나다. 약 3~700종이 지구상에 서식하며 우리가 보기에는 도무지 바퀴벌레 같지 않은 종류도 많다. 풍뎅이와 비슷하게 생긴 종류도 있다. 동남아 및 남미에선 식용 바퀴벌레를 주로 즐겨 먹는데 맛이 고소하다고 한다. 모습마저 판이하므로, 외지인들은 이게 바퀴벌레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바퀴벌레 종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바퀴벌레들은 대부분 산속이나 썩은 나무 속에서 살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만나기 어렵다.
한국에서 발견된 바퀴벌레 11종 중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건 6 종류. 이질바퀴, 잔이질바퀴, 독일바퀴, 집바퀴, 먹바퀴, 그리고 경도바퀴. 모두 가주성(家住性) 바퀴로 쉽게 만나는 종이다. 특히 이질바퀴(미국바퀴)와 잔이질바퀴(호주바퀴), 먹바퀴는 덩치가 대단히 큰 편인 데다가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독일바퀴가 가장 흔하다.
유연한 몸을 가져 좁은 틈새가 많은 곳에서 서식하며, 따듯하고, 어둡고, 습기 찬 곳을 좋아한다. 화장실의 개수구나 부엌 싱크대 등 배관 주변은 완벽한 서식지가 된다. 일례로 어느 낡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끔가다 바퀴벌레가 한두 마리씩 출몰해 나올 때마다 잡아주고 방을 바꿔주고는 했는데,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처음 체크인한 고객이 기겁을 해서 달려가 보니, 화장실에 바퀴 30여 마리가 반송장 상태로 꿈틀대고 있었다고 한다. 업체를 불러서 조사해 보니 오래되어 틈이 벌어진 변기통과 화장실 바닥 사이의 공간에서 번식한 놈들이었다. 즉, 서른 마리로 불어날 때까지 인기척이 있는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 기어 나와서 생존 활동을 한 것이다. 상당한 지능과 더불어 재빠른 발도 있으니 괜히 영악한 벌레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특유의 짙은 갈색 빛깔의 매끈한 등짝에 빠르게 움직이며 긴 더듬이를 휘둘러대는 활발한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느낄 만하다.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바퀴는 질색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이며 사사삭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가끔 집 안에서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탓에 겁 많은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도 한다. 기어 다니는 모습만 봐도 겁을 내는 사람에게 정면에서 날아오면 기절할 정도로 무섭다.
꼬리 쪽에는 진동을 감지하는 민감한 감각기관이 있어서 약간의 진동에도 재빠르게 도망갈 수 있다. 또한 그 진동을 느꼈을 때 반사적으로 그 진동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갈 수 있는 능력도 있어서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보통 곤충들보다 죽이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곤충 중에서 연구가 상당히 활발한 편이며 가장 상세한 해부도를 자랑한다. 예전에 모 대학에서는 전자현미경 실습 실험과정으로 바퀴를 해부해 표본을 제작한 후 금 코팅 해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요즘 바퀴벌레들은 살아남기 위해 단맛을 싫어하는 쪽으로 식습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단맛을 좋아하는 놈들이 단맛 나는 살충제를 먹고 다 죽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핵전쟁 이후에는 바퀴벌레만 살아남는다는 설이 있다. 이는 반쯤은 낭설이다. 바퀴벌레가 방사능에 특별히 강하진 않고 인간보다는 나은 정도다. 인간은 4~10Gy(400~1000rad)의 피폭을 당할 경우 죽으며 반수치사량(LD50=실험대상군의 절반이 죽는 수치)은 4.5Gy 정도이다. 반면에 바퀴벌레(구체적으로는 독일바퀴)의 반수치사량은 64Gy로 인간의 10배가 넘는다. 일부 초파리는 640Gy까지, 박테리아는 무려 15000Gy까지 버티기도 한다.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방사능에 강한 이유는 세포 주기가 인간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남는 정도. 애초에 핵전쟁은 K-Pg 멸종이나 빙하기의 스케일에는 훨씬 못 미친다. 바퀴벌레 말고도 다양한 곤충, 무척추동물,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다란 생물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동식물들이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사실 핵무기는 방사선 피해는 2차적인 문제고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 폭풍이 가장 문제이기 때문에 열 폭풍에서 살아남은 개체 정도면 방사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 20세기 초 일본의 낙후된 도시 인프라와 목재 구조물들, 유리 파편의 폭풍이 피해를 더 키웠고 인간도 대한민국과 같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 안전유리 위주의 21세기의 도시 환경에서 핵을 맞는다면 생각 외로 피격 직후 기준으로 일단은 생존 확률이 상당히 있다.
끔찍한 이미지와 달리 자연계 먹이사슬에선 최하위 그룹이라 천적이 매우 많다. 집 주변만 해도 바퀴를 전문으로 잡아먹는 농발거미나 그리마(돈벌레), 쥐, 개미, 고양이, 귀뚜라미가 있고, 바퀴벌레를 잡는 전문 사냥꾼인 는쟁이벌도 있다. 산속이나 풀밭에서도 사마귀, 말벌, 쌍살벌, 도마뱀 그리고 새들이 바퀴벌레를 잡아먹는다. 특히 새들은 바퀴벌레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쪼아 먹는다. 말벌류 역시 바퀴벌레에겐 공포의 대상. 말벌은 양봉업자의 골칫거리이지만 한편으론 파리, 모기, 바퀴벌레 등 해충을 잡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퀴벌레를 사냥한 말벌은 바퀴를 손질한 뒤 애벌레들에게 갖다준다. 다만 바퀴벌레는 밤에 활동하므로 주행성인 말벌과 만날 일은 많지 않다.
집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개미나 농발거미, 꼽등이, 그리마 등에게도 아주 좋은 한 끼 식삿거리이다. 열대 지방이나 사막 등에선 전갈의 좋은 먹이기도 하다. 심지어 도심지에서도 고양이, 닭둘기 등의 포식자가 있다.
바퀴벌레는 잡식성이라 연가시도 바퀴벌레에 종종 기생한다. 한 경험자의 말에 의하면 시골에서는 바퀴벌레에 연가시가 기생해 죽여 버리는 일이 꽤 흔하다고. 바퀴벌레 역시 자연에서는 연가시의 숙주의 일종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곤충이 그렇지만 동충하초도 바퀴벌레 몸에서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