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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소설가 김승옥이 1964년 발표한 단편소설이자, 김승옥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주인공인 남자 "윤희중" 이 무진에 머무른 2박 3일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편적인 해석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무진은 탈일상적 공간이며, 서울에 아내를 두고 혼자 내려와 이곳(비록 참담한 어린 시절의 과거가 있는 곳이라지만)에 머무르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무진에 거주하는 음악 교사 하인숙을 통하여 일탈을 꿈꾼다. 주인공의 이러한 행동은 현실과 일탈 사이에서 번뇌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해석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안개로 뒤덮인 무진은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탈일상적인 공간을 대표하는 상징 매체가 된다.



김승옥의 문학은 1960년대 문학사에 대하여 공부할 때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당시 6.25 전쟁이 끝난 후 발표된, 즉, 최인훈의 『광장』으로 대표가 되는 한국 전후문학 특유의 무기력증과 엄숙주의 그리고 퇴폐성에서 벗어나 당시 1960년대의 대표상들을 김승옥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효과적인 공간 선택과 동시에 어울러지는 캐릭터성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문학사 쪽으로 높다. 


총 3차례 영화화가 됐고 3번 전부 김승옥이 직접 각색했다. 첫번째 영화화는 1967년 개봉작이자 흑백영화인 안개. 감독은 김수용, 주연배우는 신성일과 윤정희. 사실 영화상에서 여럿 각색이 되어 달라진 점도 있다. 그리고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작품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0년대에 화질이 복원되어 DVD로 발매되었다. 네이버캐스트에서도 무료로 볼 수 있다. 두번째 영화화는1974년 황홀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남자주인공은 남궁원으로 바뀌었지만 여주인공은 황홀에서도 윤정희가 맡았다. 세번째 영화화는 1986년에 "무진 흐린 뒤 안개". 이 작품은 무진기행의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던 앞의 두 영화화는 달리 인숙이 기준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주위를 맴도는 스토리가 추가되었다. 

가끔 퀴즈에도 나오고는 하는데, 무진은 실제로 없는 허구의 장소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60년대의 문학 청년들이 서울역에서 무진 (가는 거) 한 장 주세요!! 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소설 초반부에 화자와 함께 탄 승객들의 대화나 작품 자체에서 묘사하고 있는 '무진'의 풍경을 보다 보면 저자가 어린시절 살던 곳인 전라남도 순천의 풍경에서 그 모티브를 따 왔을 가능성이 높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는 이 점과 순천이 저자의 고향이란 인연으로 인해 같은 순천 출신의 동화 작가인 정채봉 씨와 김승옥 씨를 기념하는 순천문학관을 설립했으며, KBS 순천 방송국에선 이름을 딴 '김승옥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문학 평론가 유종호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이 작품에 바쳤다. 하지만 정작 김승옥은 이 작품을 구성이 좀 진부하다고 말했으며, 문학 평론가 김현은 그냥 찢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혹평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공지영이 소설 도가니의 배경으로 '무진시'를 택했다. 다만 여기서는 인화학교 사건이 벌어진 광주의 옛 이름이 '무진주'인 것을 착안해 작중 배경의 바탕은 광주다. 무진시라는 이름만 빌린 것은 아니며, 작중 초반부에 주인공이 읽는 책이 무진기행이기도 한 등 무진기행과 겹쳐 읽게 하려는 시도가 꽤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플롯 자체도 비슷하게 짜여 있다. 꿈을 안고 향한 공간인 무진에서 현실에 패배하고 다시 현실적 공간으로 돌아온다는 구조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굳이 무진기행과 겹쳐 읽도록 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을 많이 하는 듯하다.

그밖에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의 작중 배경 도시의 이름도 무진인데, 이 소설에서 영감을 기인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최근에는 2017년 [알쓸신잡]에서 무진기행에 대한 각자의 감상, 술회가 한 꼭지처럼 다뤄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