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꼴통 학교에서 명문학교로 거듭난 대청중학교


일반계 중학교 중에서 교육열로 손꼽히는 곳이다.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최강중'의 모티프가 된 학교라는 것만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실제로 드라마가 과장이 섞이긴 했어도 반쯤은 맞다고 인정할 정도로 유난하다. 이 근방 중학교들이 원래 좀 그렇지만 수업시간에 수업 안 듣고 학원숙제하는 건 기본이고, 방학 때 모의 UN, 모의 법정, 영어토론, 올림피아드, KMO, IBT, 국어인증시험, 한자급수시험, HSK 등 여러 스펙을 쌓고 선행까지 더한다. 겨우 중학생인데도 올림피아드랑 날짜 겹친다고 최상위권 이과생들이 대거 수학여행을 빠지는 진풍경이 일어날 정도로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교육열의가 세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학생들의 대부분은 언제나 학원을 끼고 대부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한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내신 공부를 시작한다. 특히 수학과 같은 과목은 선행과 내신을 학원에서 병행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청중이 명문이라는 인식을 만들게 된 것은 90년대~2000년대 초중반이다. 사실 이때가 대청중학교의 전성기였다. 90년대 후반까지는 한 학년 학생수가 600명을 넘길 정도로 많은 학생수를 기록했고, 90년대 후반에 주변 대치초등학교와 대곡초등학교의 인원수가 줄어듦에 따라 2000년에 들어서 한 학년 학생수가 35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이 시절의 최종 대입 입결은 공식적인 자료를 구할 수는 없으나, 300명대 중반의 졸업생을 배출하던 당시에는 100을 가뿐히 넘기는 수의 학생들이 SKY와 의치한에 최종 진학했다. 600명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이 훨씬 더 높은 수치를 보여줬다. 이 시절은 대입평가방식에서 수능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했고, 수시 인원수가 정시 인원수에 비해 확연히 적었기 때문에 강남권의 SKY 진학이 대단히 유리하던 시절이다. 

특차가 없어진 이후에도 연고대는 내신을 %가 아닌 수우미양가로 평가하던 시절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줄어든 서울대 인원수는 거의 대부분 연고대와 의치한으로 치환되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가 내신 비중이 올라간 이후 서울대 입학생이 줄어들고 연고대가 급증한 것과 유사하다. 애초에 대원외고를 20명 넘게 보내던 중학교는 대청중학교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절의 대청중학교는 지금의 대청중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흡연자는 생각보다 흔해서 금연학교 보내느라 결석학생들이 발생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좀 논다는 학생들이 대단히 어설퍼 다른 학생들에게 무력으로 역관광 당하는 경우가 잦았고 주변 중학교에게 노는 학생들이 호구 취급을 받았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평범한 학교 분위기였다. 어차피 중학교 성적은 대입과 전혀 무관하니 극성스러운 학부모는 별로 없었다. 극성스러워 봤자 주변 인식만 나빠질 뿐,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었다고 봐도 될 듯. 전략적으로 자발적인 실업계고 진학을 택한 경우를 제외하면, 인문계고를 탈락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에 다들 중학교보다는 수능이라는 큰 그림을 보며 중2~중3때부터 천천히 준비한 경우가 많았다. 


학원은 영어(토플)와 수학(정석 및 개념원리 선행), 언어 위주로 다니는 정도로 선행학습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으며, 학원에서 내신을 챙겨주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특목고를 가려는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준비는 했으나, 잡다한 스펙이 별 의미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토플과 텝스, KMO를 노리는 수학 경시대회 준비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국영수과사는 실력대로 보니 공부 좀 하거나 성실한 학생들은 대부분 고득점을 하고, 음미체나 기술, 가정 등 주요과목이 아닌 곳에서 중학교 내신 등수가 결판이 나는데 학원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 것은 당연하다. 다만 외부 전학생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많았는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손가락으로 꼽는 성적을 내다가 전학 이후 첫 시험에서 중하위권으로 쳐지는 경우가 꽤 흔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대청중의 문제 스타일이 대단히 지저분하고 꼬아서 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중학교 비주요과목에서 '모두 고르시오' 문제의 답이 하나이거나, 1~5번 전부 선택해야 정답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가정 과목의 실기 평가가 '젓가락질로 조그만 콩을 시간 내에 몇개나 옮기는가' 따위였으니 내신을 챙길 학생은 챙기고 버릴 학생은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쨌든 이런 까다로운 시험을 일년에 4번씩 3년 총 12번이나 치니 고등학교 진학하면 국영수 기본실력만 받쳐준다면 중위권 학생들도 패왕급이 되는 효과도 있긴 했다. 어쨌든 이렇다보니 중학교에서는 별볼일 없던 애들이 주변 고등학교(8학군 포함) 전교권에 포진하고 더 나아가 그 학교들의 전교 1등 자리들을 접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하니 자연스레 대청중은 명문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 이후 학풍이 좋다고 하여 이쪽으로 이사오는 학부모들도 생기고 주변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여기 출신이라고 하면 눈여겨 보는 효과가 생겼다.

치맛바람이 아주 상당히 세고 중학교 때부터 내신경쟁이 치열해 강남 8학군 고등학교 수준으로 문제 오류에 대해 엄격하다. 오죽하면 선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채점기간에 가장 걱정하는게 부모님들의 항의다. 특히 학생들의 부모님들 중 고학력이거나 대학교 교수들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문제나 답이 이상할 때 직접 선생보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청중학교 교사들의 전반적인 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대청중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거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수업준비도 잘 하는 편이다.

다만, 학교 수칙 같은 것은 크게 엄하지 않은 편. 학생들도 열의가 상당한 편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학교 자체의 교육열이 세서 학생들을 7시 55분까지 등교시켜 자습을 하게 하고, 상위 교육행정기관에 허락을 얻어내 자체 수학과학 영재학급을 최초로 도입하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자율적인 야자를 위해 도서관을 개방하기도 했다. 더더욱 놀라운 점은 중학생 밖에 안 된 애들이 우등생들을 중심으로 진짜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했다는 것 현재도 신입생이 꾸준히 자발적 참여한다.

투자가 엄청난 만큼 대신 그만큼 학생들 수준이 높다. 그만큼 기출문제도 어렵기로 유명해 주변에서는 명문으로 쳐주는 학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