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차이
옛날에 잘나가던 검색엔진 라이코스
상징이 개(강아지)였고 TV 광고에 "잘했어 라이코스" 라는 말이 한참 유행한적이 있었다.
라이코스의 전성기와 몰락
라이코스의 원형인 웹 검색엔진은 1994년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연구실에서 개발되었다. 1995년 6월에 인터넷 투자기업 CMGI이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라이코스를 기업으로 만든다. 출발은 웹 검색엔진으로 시작했지만, 이용자를 광고에 노출시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이용자를 더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라이코스는 그를 위해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가 되기로 결정한다.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잡은 라이코스는 자체 개발도 하고, 타 기업과의 제휴 및 인수를 통해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몸집을 키웠다.
1996년에 라이코스는 웹문서 검색 이외에도 다른 회사와의 제휴를 통해서 인물 디렉토리 검색 및 이메일 디렉토리 검색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고, 그 해 말에는 멀티미디어 파일을 검색하는 기능도 선보인다. 웹문서 검색 엔진의 데이터베이스 규모도 1994년 7월 처음 공개했을 때 5만 4천 개의 웹문서에 불과하던 데이터베이스가 1996년 11월에는 6천만 개로 늘어나는 등 당시에 가장 큰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검색엔진이 되었다.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마친 후, 라이코스는 포털처럼 보이도록 사이트 디자인을 바꾼다. 이 해에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클럽 라이코스'라는, 회원이면 제휴한 회사의 서비스가 할인되는 일종의 회원제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1997년, 라이코스는 '라이코스 프로'라는 이름의 업그레이드된 웹문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용 인트라넷 검색 솔루션도 선보인다. 1997년 5월에는 최초의 해외 지사, '라이코스 유럽'을 세워 유럽의 37개 국가에 다양한 언어로 포털 서비스를 할 것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확장에 힘입어 라이코스는 1997년 10월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한다. 이 해에 라이코스는 자사 사이트의 책 판매 권한을 3년 간 독점적으로 반스앤노블에 넘기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라이코스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 기업 인수합병을 진행한다. 개인 웹사이트 설립 도구 제공 및 웹 호스팅 기업인 Tripod를 인수하기도 했으며 무료 이메일 서비스 회사, 인물 및 지역 검색 서비스 회사, 뉴스 및 검색 서비스 제공 기업인 와이어드 디지털도 같은 해에 인수했다. 이런 회사 말고도 채팅 업체, 여행 정보 제공 업체, 구직 업체도 인수하며 한 사이트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종합 포털이 되어간다. 야후!의 강력한 디렉토리 검색에 맞서기 위해 디렉토리 검색 결과 제공 업체인 와이즈와이어(WiseWire)를 인수한 것도 이 해이며, 끔직한 키워드 검색 결과를 그나마 개선하기 위해 자사의 다른 서비스 제공 사이트와 연동시키는 시스템인 LINK를 갖춘 것도 이 해이다 . 1997년 말에 흑자를 달성한 것과는 다르게, 1998년에는 다시 적자전환하게 된다.
라이코스는 몸집을 키우며 쭉 상승가도를 달렸고, 1999년에는 전 세계 40여개의 국가에서 서비스를 하는, 야후!를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포털 사이트가 되었다. 서비스 분야의 확장도 계속되어 1999년 초에는[Fast Search & Transfer과 제휴하여 MP3 음악 디렉토리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WebMD에 3년 동안 독점적으로 건강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계약도 맺었다. 이것 이외에도 주식 및 기타 투자 정보 제공 기업도 인수하고, 11월에는 온라인 게임 회사인 게임스빌닷컴까지 인수한다. 1999년 연말에는 라이코스 웹샤퍼(Lycos Webshopper)이라는 새로운 쇼핑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1999년 말에 라이코스는 세계로도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세운 지사 중에는 동남아시아 지사라 할 수 있는 라이코스 아시아, 일본 지사인 라이코스 재팬, 한국 지사인 라이코스 코리아가 있다. 남미의 경우는 진출한 국가마다 하나씩 지사를 세워 총 12 국가에 해외 지사를 세웠다.
이 해에 디렉토리 검색에서 야후!와 경쟁하기 위해 라이코스는 4천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와이즈와이어를 버리고 넷스케이프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픈 디렉토리 프로젝트로 자사의 디렉토리 검색 결과 제공 업체를 바꾼다. 이후 오픈 디렉토리 프로젝트는 금세 야후! 디렉토리 검색을 규모와 품질에서 능가하게 되어 라이코스가 야후!를 상대로 적어도 디렉토리 검색에서는 승기를 잡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라이코스는 2000년 5월,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에 스페인의 거대 통신회사 텔레포니카의 인터넷 관련 자회사 테라 네트웍스로부터 54억달러에 인수되었고 두 회사는 테라 라이코스라는 이름으로 합병했다. 합병 후에도 라이코스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제공 기업을 인수하는 등 사업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라이코스가 이렇게 여러 분야로 진출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자사 소유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보이는 광고를 통한 수익 획득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어떤 회사가 아무리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도, 그것으로부터 수익을 얻지 못하면 그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렇게 열심히 사업 확장을 해가며 광고 수익을 갈구해서 1999년에는 인터넷 관련 기업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기업이었지만, 라이코스는 이듬해인 2000년부터 더이상 안정적인 흑자를 낼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이때부터 계속 적자 상태가 유지된다.
결국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이 없었던 라이코스는 닷컴버블이 터진 후 인터넷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사라지고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 검색업체, 광고주, 누리꾼을 모두 만족시키는 검색광고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검색은 인터넷 포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된다. 그 결과 검색광고 제공 기업이나 고품질의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업체들, 또는 이 업체들로부터 결과를 사오는 인터넷 포털들이 이익을 내며 시장을 장악했고, 검색을 버리고 다양한 서비스를 벌이는 사이트에 붙어있는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어온 라이코스는 경쟁자들에게 점유율을 탈탈 털려가면서 동시에 광고를 통해 얻은 수익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라이코스는 점유율 면에서 끝없는 추락을 경험했고 2001년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최악의 만년 적자에도 시달리게 된다. 결국 라이코스는 자력으로 버티지 못하고 매년 적자만 내는 짐덩어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테라 네트웍스는 2004년 라이코스를 인수하는데 투자된 금액의 50분의 1, 즉 1억 달러도 안 되는 9500만달러라는 가격에 다음에 팔아버린다. 다음은 이 회사를 미국 진출의 발판으로 사용할 의도로 인수했으나 목적 달성에 실패하고, 라이코스는 테라와 합병한 시절처럼 계속 적자가 나는 등 짐덩어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2009년 3분기, 십수년만에 드디어 소규모 흑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다음은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2010년 8월에 매입금액의 반도 채 되지않는 3600만달러라는 엄청난 헐값에 라이코스를 인도의 와이브런트(Ybrant)에 매각하였다. 이후 라이코스는 와이브런트의 완전한 자회사가 되어, 이름도 '와이브런트 라이코스'로 바뀌어 인도 기업의 인터넷 포털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