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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 가수 '사카모토 큐' 의 비극

1985년 소속사를 옮긴 후 싱글 그리운 Love-song/마음의 눈동자 (懐しきlove-song/心の瞳)를 발매하고 다시 가수 활동을 본격화 하려던 차에, 그 해 8월 12일 단일 항공기로는 역대 최다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고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 휘말리며 43세를 일기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중에서 마음의 눈동자(心の瞳)는 큐 본인의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복귀작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바치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녹음을 마치고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유작이 되고 말았다.

큐는 사고 당일 NHK-FM의 특집 프로그램 녹음 방송을 마치고 선거에 출마한 지인의 선거 사무소 개소식 응원을 위해 도쿄에서 비행기로 오사카로 가던 중 예기치 못한 추락 사고로 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평소 국내 이동시에는 무조건 전일본공수만 이용했고, 소속 프로덕션과 부인 카시와기 유키코에게 항상 "항공편은 반드시 전일본공수로 해줄 것"이라고 신신당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럴 만한도 한 게 1970~80년대까지는 일본항공 역시 대한항공 못지않게 추락사고가 많았다. 또한 이 사고 3년 전(1982년)에는 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하필 그 날은 오봉(お盆, 일본의 추석) 연휴 기간이라 지인의 측근이 전일본공수의 표는 전부 매진이라 구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구입하여 보내 온 표가 일본항공 123편이었다. 그가 난생 처음 타보는 일본항공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일을 했을지는 큐 본인을 비롯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노선에 전일본공수 항공편도 있어서 가족들과 소속사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소식에 처음엔 안도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발표된 탑승객 명단에 큐의 본명인 오시마 히사시와 매니저인 고미야 카츠히로가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으며, 큐와 함께 비극스러운 운명을 맞은 고미야 카츠히로 매니저는 공항에 일찍 가서 전일본공수표로 바꾸려 했으나, 오봉 귀성객들이 많아 바꾸지 못하고 탑승했다고 한다. 이 사고를 다룬 천국에 있는 내 아이에게라는 드라마에서 당시 123편의 모형에 탑승했던 승객들의 사진과 이름이 당사자들의 좌석에 붙어 있는데, 큐, 고미야 두 사람은 당시 1등실이었던 2층에 탑승하고 있었다.

추락 후 99시간이 지난 8월 16일, 가족들에 의해 시신이 확인되었는데 상태가 굉장히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한편, 큐의 죽음은 일본 가요계의 큰 손실이기도 했지만, 일본 인권 운동계에도 큰 손실이었다. 큐가 평소에 인권을 강조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구습을 타파하는 데 힘써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