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은 몽골의 각 부족에서 뛰어난 젊은이를 뽑아 군대를 만들었다. 오늘날 군대의 소대, 중대, 대대처럼 기병 10명으로 가장 작은 무리를 만들고, 그 작은 무리들을 100명으로 이루어진 큰 무리 하나로 묶은 칭기즈 칸은, 100명의 무리 열 개로 1천 명의 무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1천 명의 무리 열 개를 묶어 ‘투먼’을 만들었다.
투먼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의 사단과 규모가 비슷하다. 진격 방향을 바꾸거나 작전상 후퇴할 때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쉽게 혼란에 빠지는 다른 군대와는 달리, 투먼으로 조직된 몽골군은 자기가 속한 무리의 지휘관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몽골 기병이 타던 말은 체구가 작지만 튼튼했으며 하루에 200킬로미터를 달렸고, 사막의 바람에서 물 냄새를 맡고 오아시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몽골군도 힉소스인들 그리고 고려나 조선의 병사들처럼 합성궁(아래 사진의 '각궁' 참조)을 사용했는데, 300미터 넘는 곳에 있는 목표도 맞힐 수 있었다. 영국군이 200여 미터 떨어진 곳의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활인 롱보우(Longbow)로 백년전쟁 때 프랑스 기사단을 여러 번 무찔렀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몽골 기병은 먼 데 있는 목표물을 맞힐 가벼운 화살과 가까운 곳의 갑옷을 입은 적을 공격하기 위한 무거운 화살 60개로 채운 화살통을 늘 지니고 다녔다. 화살이 떨어지면 투먼과 함께 다니는 짐마차에서 보급을 받았다. 몽골 기병 중에도 적과 직접 칼과 창으로 싸우는 병사들은 옛날 우리나라 장수들이나 고구려의 개마무사도 입었던 비늘갑옷(여러 개의 작은 쇳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은 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늑대가죽으로 만든 옷과 강철 투구만 갖췄다. 적을 빠르게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몽골군은 적의 무기도 곧잘 받아들였다. 그 덕에 중국의 화약과 아랍인들이 만들어준 투석기를 사용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물론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그랬듯이 적진을 정찰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2~3마리에서 많게는 6~7마리의 말을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지금 타고 있는 말이 지치거나 부상을 입으면 바로 갈아탐으로써 투먼의 진격 속도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식사 또한 캠프를 치고 소금에 절인 고기나 생선을 요리하거나, 빵이나 죽을 만들어 먹던 다른 군대와 달리 암말의 젖을 마시거나 함께 이동하는 양 떼를 잡아먹음으로써 해결했다. 전투나 급히 이동하고 있을 때에는 보르챠라는 말린 고기를 먹었는데, 하도 맛이 없어서 아주 배고플 때에만 먹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아주 없으면 말에 살짝 상처를 내 피를 뽑아 마시기도 했다.
칭기즈칸과 그 아들들의 휘하에서 몽골 기병은 동쪽으로는 고려와 중국,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아랍의 여러 제국과 동유럽의 슬라브 민족이 세운 왕국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다. 특히 칭기즈 칸이 총애하던 장수인 수부타이의 투먼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중심으로 하던 키예프 공국을 멸망시켰는데,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입장이 정반대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