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상
1935년 09월 19일 ~ 1995년 12월 30일
1935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목포시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광주시장을 역임하였다. 그렇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장이었다. 이후 전라북도 부지사를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담양군-곡성군-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고재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되기 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생 이정현으로부터 정치 똑바로 하라라는 취지의 편지를 받았다. 이에 이정현을 자신의 비서관으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한일의원연맹 간사,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홍기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제2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당 홍기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말부터 1994년 말까지 관선 전라남도지사을 역임하였다. 1995년 연말 뇌졸중으로 별세하였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8권에서 그를 다룬 시를 썼다. 제목은 사람 이름과 같은 '구용상'.
광주시장 발령 이래
소비뿐인 살림
가난뿐인 살림 벗어나려고
밤낮으로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던 중
5월 광주 한복판에 섰다
혓바닥 닳고
구두 바닥 닳았다
시민군 총기 6천 3백 65정
어렵사리 회수
각계 인사 청하여
수습위 결성
시 자체로 사태 수습
시 금고 텅 비어
양곡도매상한테
3천만원 빌려
시민 6천여 세대
생계비 5천원씩 조달
계엄군 작전 뒤
시체 수습
시설 파손 복구
부상자 치료
환경정비 등
24시간 뛰어다녔다 눈 충혈이었다
5월
그런 광주를
5월 27일 계엄군 들이닥쳐
다 망쳐놓았다
5월 31일 시장 면직
내무부 본부 대기발령
이임사
본인은 가장 존경받을 만한 시민의
시장이라는 사실을
최고의 영예로 알고 떠납니다
공무원 구용상
그는 마음속에서 오래 광주시민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