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일대에 있었던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의 합성섬유 공장에서 일어났던 산업재해 사고다. 국내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여겨지는 꽤나 중요한 사건.
이 회사의 시초는 1964년 화신그룹의 창업주 박흥식이 일본 도레이에서 노후된 비스코스 인견을 제조하는 설비를 들여와 2년 뒤인 1966년 공장을 세워 운영한 것인데, 정작 박흥식은 1년만에 이 회사를 매각했다.
설립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노후된 기기에서 발생한 불순물인 이황화탄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직원 대부분이 가스에 중독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자 8명에 장애판정 637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언어장애, 반신/전신 마비, 정신 이상 등의 증세를 보였다.
이황화탄소의 발생과 그 유해함을 회사 측에서도 알기는 한 모양인지, 환기 설비를 설치하긴 했으나 문제는 거꾸로 설치하는 바람에 바깥으로 나가야 할 이황화탄소가 도로 안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격무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기계에 머리를 박고 일했기 때문에 환기 장치의 유무와 상관없이 기계에서 스며나오는 이황화탄소를 직접 들이마시게 되었다.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 사망자와 재해자는 위에서 소개한 수치보다 훨씬 많다. 김봉환은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1991년 사망했고, 같은 해 권경용은 방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1992년 고정자는 정밀검진을 받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목욕탕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몸이 아프고 죽을 것 같아서 퇴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회사는 약간의 보상금으로 입막음을 시도했다. 당시 구리, 도농 주민 상당수가 이 회사의 일자리에 의존했기에 회사의 은폐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 회사에서는 1981년 첫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나왔는데, 노동부는 1986년 2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원진레이온을 표창했다.
그러나 사지 마비, 정신 이상, 기억력 감퇴, 콩팥 손상 등의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이 십수 년 동안 여러 명에게서 나타났고, 그중 몇명이 1987년 정부에 진정함으로써 원진레이온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노동부는 조사에 나서 원진레이온의 위법 사실을 파악, 발표하였지만 산업재해의 인정과 보상에는 인색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1개월간의 요양치료를 받고 산재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노동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재요양신청을 거부해 버린다. 1991년 김봉환 노동자의 장례투쟁과 권경용 등 노동자 3명의 산재피해 폭로 등을 계기로 국회는 진상조사 후 <원진직업병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고, 정부도 산업재해/직업병 예방대책을 내서 원진 전/현직 노동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면서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직업병 환자들을 더 발견해냈고, 1992년 인정기준 개정투쟁을 거치면서 정부도 직업병 인정기준을 개정했다.
결국 회사는 1993년 6월 8일 폐쇄와 동시에 폐업되었고, 많은 노동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 섬유, 의류 업계에 종사했던 타사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매우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더 섬뜩한 것들이 많은데, 영업사원으로서 원진레이온에 계약차 방문했더니 노동자들의 비중격(鼻中隔)이 녹아내려 콧구멍 사이에 구멍이 뚫리는 바람에 마치 만화에 나오는 식인종들처럼 콧구멍 사이에 볼펜을 끼워놓고 다니더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건 이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피해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라는 통계가 있다. 여기서 직업병을 얻어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인 원진재단이 만든 병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웃한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원진녹색병원이다. 이 병원이 설립된 이유가 산재 노동자와 관련되어 있어, 축하공연 당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민중가요 가수들이 초청되었다.
1993년에 원진레이온이 폐쇄된 이후 부지는 방치되었고, 1996년에 부영에서 이 토지를 매입해 1998년부터 아파트를 건설했다. 2000년 가을 이후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과거의 악명이 지역 주민들에게 잘 가시지 않다 보니 입주를 꺼리는 편이었으나, 수도권 전철 중앙선 개통 1~2년 전부터는 제법 자리를 잡아갔고 이후 중산층 거주지로 그럭저럭 남게 된다.
레이온은 국내에서는 유지 중인 공장은 없고 원사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산 원사가 많이 수입되고 있다. 국내산 인견이라고 해도 실 자체는 대부분 중국산이고, 그 원사로 천을 만들고 염색을 한 후 옷이나 원단을 만드는 공정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는지라 국내산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내의 레이온 공장이 전부 문을 닫았고, 특히 원진레이온의 설비는 폐업 후 1994년 라전모방이 경매로 낙찰받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국영 화학섬유총공사에 매각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한국보다 몇 배나 더한 온갖 질병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1999년에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가 답사하여 공장 인근에서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했으나, 이들은 한국 수입 사실을 알았지만 유해성에 대해 모르겠다고 했다. <월간중앙> 2014년 9월 17일자에 의하면 북한으로 기기가 흘러들어갔다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