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 3일, 이란 항공 655편 에어버스 A300B2-200 민간 여객기가 미 해군 소속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USS 빈센스 함에 의해 격추 당한 사건. 미군측의 각종 실책으로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민항기를 F-14로 오인하여 격추시켰던 사건으로, 미군의 흑역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막바지였던 1988년, 이란과 이라크 양측이 무장 선박을 동원하여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민간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미합중국 해군은 공해상에서 이들의 적대활동을 감시하고 필요할 경우 무력으로 응징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하여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1년 전 미국의 군함이 피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듬 해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 새뮤얼 B. 로버츠가 기뢰에 피격되어 대파되자 보복으로 '사마귀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을 통해 이란 호위함 한척을 격침시키고 함대의 반을 궤멸시키는 등 경계가 최대 상태였다. 그래서 미국은 교전수칙까지 변경해 가면서까지 함대 파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3일에도 이란 해군에서 출장나온 무장선박들이 해협을 배회하고 있었고, 해협에서 초계활동 중이던 미 해군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의 3번함 USS 빈센스 함(USS Vincennes, CG-49)이 탑재 헬리콥터를 먼저 파견하여 이들을 내쫓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헬리콥터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빈센스 함에서도 즉시 추격에 나서 5인치 함포 사격을 가하면서 양측이 교전을 벌였다.
슬금슬금 도망가는 무장 선박을 추격하고 있던 빈센스 함은 이란의 한 공항에서 발진하여 순양함을 향해 접근중이던 이란 공군의 F-14를 발견하였다. 초긴장 상태에서 빈센스 함은 F-14로 보이는 미확인 물체에 경고를 하였으나 아무런 응답도 없었고 오히려 F-14로 인식된 물체에서 함선을 공격하기 위한 행동을 보이자 대공 미사일인 SM-2를 발사해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 미확인 물체 격추가 단순한 F-14 전투기로 판명되어 끝났으면 일상적인 교전상황으로 넘어갔겠지만, 이 때 빈센스가 격추시킨 것은 이란항공 655편 에어버스 A300B2-200 여객기였다.
655편 A300 여객기는 미국 빈센스 함의 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미사일을 맞은 655는 상공에서 폭발한 채 바로 사라졌다.
사건의 원인 '나비효과'
사건의 원인을 따지고 보면 전적으로 미국 빈센스 함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 굵직한 것들을 뽑아보면 3가지인데, 각각의 삽질성 행동이 서로 물리고 물려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첫 번째는, 빈센스가 공항에서 막 이륙한 미확인 이란항공 655편을 탐지했을 때, 민간 항공기인지 군용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함내에 비치되어 있던 민항기 스케줄을 체크했다. 이 스케줄표에는 문제의 이란항공 655기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정작 이란항공 655기는 승객 한명의 출국 수속이 지연되어 이륙이 27분동안 지연되고 있었다. 게다가 전투정보실(CIC)의 조명은 어두컴컴했고 빈센스의 5인치 함포가 사격을 할 때마다 조명은 깜빡거렸다. 심지어 이를 담당한 승조원은 페르시아 만의 시간대가 차이난다는 것을 깜빡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알려진 공식 스케줄에 없으니 저 비행기는 민항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지휘부는 긴급 회선을 통해서 해당 항공기와 교신을 시도하였다.
문제는 빈센스가 보낸 교신 내용에는 자신들이 교신하려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그 결과 주변에서 운항 중이던 항공기들은 이 무작위로 보내진 교신을 수신했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 몰랐고 결국 다들 무시했다. 게다가 빈센스에서 불러주는 대상 항공기의 콜사인을 부르지 않은것은 물론이고 고도, 속도, 방위각 정보마저도 완전히 잘못된 값을 불러주어 설령 사고 여객기 조종사들이 이를 들었다하더라도 "우리 이야기 아니네"라면서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10번의 경고 중에서 7번은 민간 항공기가 수신할 수 없는 군용 교신 채널을 사용했으니 민항기들은 빈센스에서 호들갑을 떨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이란항공 655편은 격추당하기 몇 초전까지만 해도 관제탑과 정상적으로 교신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비행기는 피아식별 신호를 발신하면서 운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빈센스에 설치되어있던 이지스 시스템중 양산초기형인 Baseline 1버젼이 피아식별 코드를 보는 방식은 레이더에 잡힌 휘점에 트랙볼을 이용한 커서를 가져다 놓으면, 커서가 위치한 지점에서 발신되는 피아식별 신호를 디스플레이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피아식별을 맡은 승조원이 공항에서 막 이륙한 미확인 항공기(이란항공 655편)의 피아식별 코드를 확인하기 위해 커서를 공항 위치에다 이동하여 민항기 코드임을 확인한 후, 커서를 그 위치에 둔 채 내버려두었다. 나중에 그 미확인 항공기가 빈센스 쪽으로 접근하자 이란의 전투기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고, 담당 승조원이 다시 한번 미확인 항공기의 피아식별 코드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승조원이 피아 식별기를 리셋하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이 경우 트랙볼로 커서를 움직여도 피아식별기의 전파빔은 마지막으로 피아식별 신호를 보낸 곳을 계속 향하게 된다. 즉 화면 상에서는 승조원이 미확인 항공기에 커서를 가져다 대고 있지만, 실제 피아식별 신호는 마지막으로 식별한 곳, 즉 공항을 향하고 있던 셈이다. 마침 공항에서는 이란의 F-14 전투기가 발진대기 중이었고, 빈센스는 미확인 항공기(이란항공 655편)의 피아식별 신호 대신 F-14의 피아식별 신호를 읽어 버리게 된다. 결국 빈센스에서는 미확인 항공기에서 군용 피아식별 신호가 발신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적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하게 된다.
세 번째는 정말 어이없는 실수로, 전투기가 배를 공격할 때는 요격하기 어려운 고고도에서 접근한 후 고도를 낮추고 미사일을 발사한 후 다시 고도를 높인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소로 인해 위기감의 늪에 빠진 빈센스 지휘부가 계속 오판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레이더실에서 항공기의 고도가 낮아지며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자위책으로 어쩔 수 없이 미사일을 쏘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진상 조사과정에서 컴퓨터가 기록한 비행기의 순항 고도는 낮아지기는커녕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었다는 끔찍한 사실이 밝혀졌다. 즉 승조원 모두 집단 최면에 빠진 것처럼 눈 앞에 보이는 정보를 무시하고 비행기의 고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믿은 것. 이는 '시나리오 수행'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을 때는 실제 결과가 예상과 달라도 그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 현상이다. 게다가 이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게릴라들과 함포 사격을 주고받으면서 교전을 벌인 상황이었기에 심리적으로 전투기가 접근하고 있다 =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추후 더 심각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빈센스함이 게릴라의 보트를 쫓아가다가 이란의 영해는 물론이고 이란항공기가 날아가던 항로 아래까지 간 것이 확인되었다. 즉 이란항공 여객기가 가까워진게 아니라 자신들이 이란항공 여객기쪽으로 가까이 달려간 것이었다.
군함이 민항기를 격추시키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으니, 사고 당사자인 이란은 물론이고 미군 내에서도 큰 논란이 벌어져서 군사 재판 및 자체적인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다.
문제는 미국은 당시 빈센스의 함장이었던 윌리엄 C. 로저스 3세 중령 이하 승조원 중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심지어 함장은 공로 훈장까지 받았으며, 대령으로 승진했고 관련 인물 중 몇몇은 오히려 '근무 태도가 훌륭했다'는 이유로 포상을 받게 된다.
당연히 수백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죽어나간데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막바지 상황에서 가뜩이나 초상집 분위기였던 이란에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여기에 걸맞게 빈센스를 맞이한 미국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이해불가능한 분위기였다.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시민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답례하는 이들의 모습은,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어처구니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빈센스 승조원들의 이미지는 추악함 그 자체로 추락했다. 물론 이들에 대해 벌하기는 커녕 오히려 칭찬과 공로훈장까지 수여해댄 미국의 이미지도 함께 추락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났고 미군이 민간인을 무더기로 죽였다는 걸 알고나서야 태도를 바꾸고 어이없어 하는 여론으로 돌아섰고, 극단적으로 찬양하던 이들도 차마 비난은 못하니 부랴부랴 덮어버리고 입을 닦았다. 윌리엄 로저스 함장도 결국 제독은 되지 못하고, 대령에서 퇴역했다. 카타르에 있던 당시 전대장(대령) 역시 진급에 실패하였고, 나중에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로저스 대령을 비난했다. 훗날 NGC의 항공사고 수사대에 출연한 그는 "아마도 빈센스 함 승조원들의 몸이 근질근질거렸던 것 같습니다."라며 대차게 까버렸다.
결국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진 이 문제는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까지 올라갔고, 결국 미국은 1억 3100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그 중 6180만 달러가 보상금으로 돌아갔다. 그와중에 미국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지른 주제에 사과가 아닌 '깊은 유감'의 뜻을 전달해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다만 21세기에도 해결되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격추 책임자들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인해 1984년 개정된 시카고 조약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빈센스함의 지휘관은 진급에 실패해 대령으로 예편하긴 했지만 어쨌든 사법처리를 밟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란에 보상금을 지급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과는 하지않아 이란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고, 이는 이란 정부가 반미감정을 키우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냉전 시기 소련은 "미국이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있냐"는 반응까지 했다.
이란은 이 사건을 잊지 않고 반미 선전에 줄곧 사용해왔다. 그러나 2020년 1월, 정작 이란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민항기를 미사일로 요격해 자국민을 포함한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병크를 터뜨리게 되면서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 사건 역시 군의 과실로 민항기가 격추되었으며, 정부는 격추 사실을 감추려 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