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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회.정치.역사.인물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한 결정적인 이유

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승리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가던 1945년 7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정부는 무조건 항복을 즉각선포할 것을 촉구했고 일본에게 주어진 대안은 오직 즉각적이고 철저한 파멸뿐이라는 포츠담 선언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일본 스즈키 수상과 그의 각료들은 발표된 포츠담 선언을 면밀히 검토하게 되는데...


그리고 얼마 후, 스즈키 수상은 포츠담 선언에 대한기자회견에서 노코멘트라며 연합군측에 답변을 주게 된다. 발표후, 스즈키 수상 뿐만 아니라 모든 각료들은 위기를 잘 넘겼다고 여기며 안심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포츠담 선언에 대한 노코멘트 발언은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폭풍을 몰고 가게 된다.



당시 일본 상황은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했을지도 모를 판이었다. 일본 해군은 궤멸 수준을 넘어 구레 군항 공습으로 사실상 강제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고, 일본의 국민들은 매일같이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자원도 없어서 군부에서 준비시키던 본토결전용 병기라는 것도 죽창, 활, 일본도 같은 단순한 냉병기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은 투석기를 포병으로 편제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투석기와 죽창을 만들 나무마저도 바닥난 상태였다.

말이 본토 결전이지 당시 일본은 나치 독일과는 다르게 본토에서조차 전쟁 속행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 독일도 본토 방어전 후반부에는 전력이 후달려서 소년병을 징집하는 등 별 짓 다 하긴 했지만, 적어도 국민돌격대를 창설하여 제식무기나 노획한 무기와 탄약도 지급했으며, 후에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할 당시에도 무장한 시민 대부분은 적어도 칼이나 죽창 같은 냉병기가 아니라 총을 가지고 싸웠다. 또한 망가진 전차를 포탑만 수리해서 고정포대로 써먹는 등 일본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 지휘부와 기득권층은 자국 상황이야 어떻든 오로지 항복할 때 천황제 유지라는 조건을 얻어 내겠다며, 자국민들을 반자이 어택과 카미카제와 옥쇄 등으로 갈아넣으며 허세를 부려서 조건부 항복을 얻어 내겠다는 포부를 내비친다. 이것이 1억 총옥쇄라고도 불리는 결호작전. 이런 일본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은 '도대체 일본인은 어떻게 된 미친 놈들인가?'라는 식의 연구도 이루어졌고, 이런 연구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다.

미국은 1945년 7월 30일에 작성한 '일본의 비밀무기: 자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이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며 자살 공격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일본인의 완전 소멸 또는 국가 존속이 위협받아야 일본이 항복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물, 핵 투하가 결정되었다.



한편 미국은 이미 핵 투하를 결정했음에도 마지막으로 일본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일본 정부는 7월 28일 오후 4시에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스즈키 간타로 총리는 여기서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표현만 바꾸어 말한 것으로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묵살할 뿐이다. 우리는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뿐이다."라고 발언했다.

일본말에서 묵살이라는 말은 2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무시한다(ignore)'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유보한다(no comment)'는 의미가 있다. 이 이중적인 의미가 영문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졌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미국 NSA 정부 문건을 비롯하여 많은 공식 기관에서 일반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있으나, 사실 일본 안에서도 1억 총옥쇄를 운운하던 당시의 광기 속에서는 포츠담 선언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고, 간타로 총리도 상술했든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으며 미국 언론 역시 Ignore를 보다 직접적인 거부(reject)라는 표현으로 약간 바꿔 보도했다. 당장 영국 BBC가 "일본이 연합군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고 보도했고, 7월 30일 뉴욕타임즈가 "일본이 연합국의 항복 촉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으며, 다른 언론들도 다 그랬다.

이 보도를 보고 완전히 빡친 트루먼 대통령은 8월 3일 원폭 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