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마 시리즈가 될 것 같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측면에서 ‘언론공작에 당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쓰는 글이다.


2003년 1월 17일 조선일보에서는 “인터넷에 민주당 의원 살생부 나돌아”라는 기사를 발행했다.
사실은 그 전날 국민일보에서 비슷한 기사가 나왔지만 17일 조선일보에서 이것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민주당사와 국회의원회관에서 인터넷에 뜬 민주당 살생부 때문에 어수선하고 흉흉한 분위기’라는 내용이다.
당연히 사실과 다르다. 그 당시는 민주당이 대선 승리 직후라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첫번째 기사가 나간 후 조선일보에서는 매일 2~3꼭지 이상 후속 기사를 써 내려갔다. 심지어 ‘공신, 역적 심판하는 인터넷’이라는 제목에 사설을 통해 “네티즌이라는 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사람까지 등장한 민주당 살생부는 단순한 장난일 수가 없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민주당과 네티즌들을 동시에 비판했다.
당시 종이신문(특히 보수신문계열)들은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던 시절이었다.
동아일보도 똑같은 내용으로 연일 보도를 이어나갔다.
‘살생부로는 큰 정치 안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흡사 왕조시대를 보는 것 같다. 낡은 정치 청산을 내걸고 승리한 민주당 주변에 아직도 이런 비민주적인 발상들이 숨쉬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외에 대다수 신문들이 ‘살생부 작성=정치권 소행’임을 기정사실화 하고 이를 친노 정치인들이 벌인 ‘낡은 정치’이자 ‘인터넷에 의한 폐해’로 규정지었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말이다.
언론들이 똘똘 뭉쳐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하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민주당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주로 후단협 출신들의 의원들이 여기 포함되었는데 언론에서는 ‘민주당 친노그룹에서 이 살생부를 작성한 것’이라고 끊임없는 이간질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당 살생부 명단에 ‘역적’으로 올라간 의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친노 의원들은 작성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었으며 결국 민주당에서는 당차원에서 검찰에 이 살생부의 작성자를 ‘수사해 달라’는 검찰 고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이 이렇게 광분하던 시기는 아직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도 하기 전이었다.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후보는 당선되었고, 취임식은 2003년 2월 25일에 있었다.
즉 노무현 당선자와 민주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해서 한참 새로운 정부의 첫번째 각료들의 인사안을 포함한 정책의 핵심 과제들을 준비해야 할 소중한 시기인데 어처구니없게 당내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구 민주당 계열과 친노 계열 정치인이 후단협 파동 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도 대선 승리로 갈등을 봉합을 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 살생부로 인해 완전히 그들 진영의 관계는 끝장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살생부의 내용은 무엇이고, 어디에 올라왔으며, 누가 작성했는가?
노무현 승리가 확정된 후 12월 25일 당선인의 홈페이지(knowhow.or.kr)에 올라온 글이다. 당시 노하우 페이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가 있었고 많은 열혈 노사모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렸다.
후단협 파동은 민주당 구주류와 친노 정치인들보다 지지자들간의 더 큰 갈등이 생겼는데 정치적으로는 의원과 조직면에서 우위에 있는 민주당 구주류가 강했지만 지지자들의 파워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월등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조직보다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이 된 첫번째 인물에 해당했다.
그 글은 온라인에서 강성 노무현 지지자들의 수많은 글 중에 하나일 뿐이다. 민주당 구주류를 비난하는 글 형태로 말이다. 물론 그 반대의 글도 인터넷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글의 내용은 선거 기간 노무현 당선에 기여한 내용을 특1등 공신, 1등 공신, 2등 공신, 역적, 역적 중 역적 등으로 분류한 글이다. 사실은 객관적이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았고 매우 감정적인 온라인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글의 종류다. 구체적인 이유도 다 기사화 된 내용들을 짜깁기한 글이다.
그런데 그런 흔하디 흔한 글을 조중동에서는 민주당내 인사이자 대선에 깊숙하게 개입한 인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이고, 자로 잰 듯한 논공행상의 기준을 제시했다면서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을 민주당내 친노들이 작성한 것이라고 둔갑시켰다. 지록위마의 고사처럼 말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당시 29세(74년생)에 철공노동자이자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는 왕현웅(아이디: 피투성이)씨 였다. 그는 그야말로 평범한 네티즌이었다.
그는 온 미디어가 ‘살생부 파동’을 다루고 있고 그것 때문에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열렸고, 해당 사건이 검찰에 고발이 당할 때까지 그 글이 정작 자신이 쓴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지만 그는 하루 일이 고되고 바쁜 평범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서프라이즈 운영자이자 국민일보 기자였던 서영석이 왕현웅과 인터뷰를 통해 그 글을 쓴 이유와 내용에 대해 알렸지만 그래도 살생부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첫째 후단협으로 촉발된 구주류와 신주류의 갈등은 대선에서 승리하고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갈등 해소의 기회를 완전히 날리고 2004년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하고 말았다.
그 진영 간에 갈등은 10년 넘게 지속되었고 민주당 분열의 상징과도 같았는데 이것을 완전하게 해소시킨 인물은 놀랍게도 안철수이다. 내가 안철수에 대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둘째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참여정부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확산 시켰다. 시작도 하기 전에 꼬이도록 한 것이다. 특히 설 연휴를 앞두고 이런 결과를 노린 보도라고 생각한다.
세째 언론은 이 사건 이후 자신감(?)을 가지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본격적으로 물어 뜯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 재임과 퇴임 이후 까지도 끝없이 공격했다. 가짜 뉴스까지 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그들은 민주적이고 언론인의 대우를 해 주는 참여정부에 대해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차라리 적당히 타협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었다면 그렇게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노무현은 또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는 대단히 이상적인 원칙주의자로 자신이 누군가를 선의로 대하면 선의로 받아줄 것이라는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승냥이 같은 기자들에게 물어 뜯겼다.
이 살생부 관련해서 왕현웅씨가 쓴 글이라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보도한 매체는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반면 사실관계가 밝혀진 후에도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민주당 내 구주류와 신주류의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들을 끊임없이 내보냈다. 지긋지긋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2003년 1월 노무현 당선인의 취임식도 하기 전에 발생한 이 ‘살생부 파동’은 당시 언론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단히 고약한 ‘공작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큰 일처럼 과장’하거나 ‘없는 일’을 ‘큰 문제’처럼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나라 언론들이 특히 잘 하는 일이라는 점은 2003년이나 현재의 2020년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병장회의’에 이어 강경화 장관 남편의 요트 관련 가짜 짜깁기 기사를 쏟아내면서 프레임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17년 전 '살생부 파동'과 전혀 다르지 않다. 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어낫언론’인 것이다.
다만 그 거짓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