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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요식업계의 대가들


한국인들이 한국적 이미지에 대한 교조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한식의 세계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일단 처음부터 한국의 것을 바로 적용할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나름 타국과 접목한 현지화를 거쳐 이것부터 대중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한국인들이 그런 음식들을 보며 "저게 무슨 한식이냐?" 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교조적이고 보수적인 태도가 한식을 한국인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게끔 고착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비단 한식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한옥, 한복 등 한국적 이미지와 관련한 전반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다. 조리법을 표준화하기보다는 손맛과 같은 비과학적이며 감정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풍토 때문에 정확한 재료 계량이 힘들며 숙성 요리가 많다보니 유통이 힘들단 점 때문에 아직까지도 해외 진출이 더딘 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김치, 불고기, 비빔밥 정도를 제외하곤 홍보가 되질 않아서 서양에서 한국 요리에 대한 이미지는 의외로 기름지고 매운 음식이라고 한다.

다만 이것은 한국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 요리도 같은 문제가 거론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쉐프들은 풍미 그 자체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크림을 쓴 까르보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의 스파게티 소스를 이탈리아 요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굳이 크림과 토마토 소스가 아니라도 향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당한 엄격함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정통 이탈리아 음식은 미국식 이탈리아 음식에 비해 인기가 현저히 뒤처지게 되었다. 그나마 이탈리아는 유럽 문명권인지라 미국 등 서구 문명의 흐름 속에 비록 변형된 형태로나마 편입되기 쉬웠지만 한국은 역사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면 한식의 사정은 이탈리아 음식의 사정보다 훨씬 세계화가 힘든 실정이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자국 요리에 대한 관점이 똑같이 교조적이고 변형을 허용하지 않음에도 그 세계화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점을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경우, 1800년대 중반에 통일전쟁이 마무리되고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지만 북부에만 경제 성장이 집중되면서 산업화에 소외된 남이탈리아의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수십, 수백만 단위로 이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주로 향한 곳은 당시 어마어마한 수준의 발전을 이룩하며 유럽인 이민자들을 블랙홀마냥 빨아들이던 미국이었는데, 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 이탈리아인들은 무지막지한 이민자 수를 바탕으로 미국 현지에서도 대규모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했다. 자연히 이탈리아 요리도 이 거대한 민족공동체를 중심으로 해서 현지에 뿌리내렸다. 하지만 어쨌건 미국은 이탈리아와는 자연 환경이나 풍토, 생산품도 다르고 이탈리아인 외에도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사는 환경이다 보니, 이탈리아인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건 말건 현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주민들과 함께 넘어간 이탈리아 요리는 이주민들 자체가 가진 것 없이 본국을 떠난 사람들인만큼 그 중에서도 특히 싸고 맛있고 포만감을 주는 서민 요리가 주를 이뤘는데,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환경과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다른 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게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지면서 이탈리아 요리는 미국에 강하게 뿌리박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구하기 어렵고 비싼 이탈리아 특산재료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나 관찰레가 빠진 대신 흔한 크림이나 베이컨을 쓰는 크림소스 파스타라던가, 빵을 접시처럼 쓰면서 그 안에 치즈를 수프마냥 가득 담은 시카고 피자가 그 예.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어 미국 문화가 제1세계를 중심으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현지화된 이탈리아 요리도 미국의 팽창을 따라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그곳들에서도 한국의 불고기 피자 같은 형태로 다시 한 번 변형됨으로써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오히려 오늘날에 와서는 이민자들을 통해 변형된 형태의 이탈리아 요리가 이미 익숙해진 것을 바탕으로 본국의 교조적인 원조 요리들과 고급 요리들도 서서히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현재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구미 지역으로의 디아스포라가 그리 많지 않고 역사도 짧은데다, 위에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식문화 자체도 현지와 너무 달라 융화가 쉽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이탈리아 요리는 본국과 국민들의 교조적인 태도와 배타성과는 별개로, 이주를 통한 외국 문화 및 새로운 환경과의 반강제적인 만남에서 어쨌거나 필연적으로 현지화 과정을 거쳤기에 성공적으로 세계에 퍼질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요리는 그렇지 못했기에, 진입 장벽이 높아 한국 내에서만 소비되면서도 교조적인 태도 때문에 접근조차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이탈리아는 요리에 대한 관점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길을 걸은 것.

다만 한국이 서구세계만 의식하면서 많이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구미 지역이 아닌 중국 동북과 러시아, 일본으로는 구한말 이래로 오랜 기간에 걸쳐 수십만 단위의 이주가 이루어졌기에, 한국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니 뭐니 떠들기 한참 전에 이미 조선족, 고려인, 재일교포 요리로 현지화하며 이탈리아 요리처럼 나름 성공적으로 입지를 구축했다. 중국에서는 북한 지역의 요리가 지린성의 지역 명물로 자리잡은 지 오래고, 러시아에서는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개성식 만두인 편수가 판셰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로컬라이징을 거쳐 출근길에 먹을 간단한 길거리 음식으로 팔리고 있으며, 김치가 변형된 한국 당근이라는 채소 샐러드는 러시아 전역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도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한편 고기 요리가 부족한 일본에서는 갈비와 호루몬(곱창), 야키니쿠 등의 한국식 고기 요리가 뿌리박았고, 그 외 냉면이나 명란젓, 김치 등도 현지화되어 모리오카 냉면, 멘타이코, 기무치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이들 디아스포라 한식이 완전히 순수한 한국식 한식이라고 묻는다면 아마 아니라는 답이 나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변형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춰 현지인들이 한식에 더 익숙해지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부터 본국인 대한민국의 다른 요리들은 이미 융화된 한국 요리들을 발판삼아 이 국가들에 한층 수월하게 진출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배타성을 보이면서도 세계화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현지화를 통한 디아스포라 한식들의 성공 사례와 문화적 교량으로써의 역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이는 한식의 무조건적인 고급화 전략에 대한 반례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수십만씩 이민시키자는 건 물론 아니고,살아남은 디아스포라 요리들이 겪었던 과정처럼 현지의 입맛에 맞는 요리로의 변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소리다.

그래도 외국인들 중에는 고유의 한식을 더 선호하고 원하는 부류들도 있으므로 현지화가 무조건 해답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긴 뒤의 일이지, 애초부터 현지화도 없이 한국식 한식만을 고집하려 드는 것은 세계화에 무리수로 작용하는 일이다. 오늘날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도 과거에 일본이 정부 주도로 세계화에 유리한 것과 어느 정도 현대화하고 개량한 것에서부터 문화 산업을 시작해서 점차 그 저변이 넓어지며 실제 일본의 정통·전통 문화까지 인기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가 아무런 변형 없이 다른 세상으로 스며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이상주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다르게 높으신 분들 및 일반 대중들의 인식은 아직도 한국 문화는 반드시 한국적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