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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의 마이클 조던 '윤경신'

윤경신은 한국인 역대 구기종목 운동선수를 통틀어 올타임 넘버원을 뽑으라면 당당히 1, 2위로 꼽히는 레전드다. 특히 해외 무대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다.

 


1996년 독일의 핸드볼 1부 리그인 핸드볼-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2001-02 시즌까지 5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골 스코어러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의 팀 VfL 굼머스바흐는 매번 중하위권에만 머물렀다. 그런데 그 다음 시즌부터 중상위권으로 순위가 오르더니 2005-06 시즌에는 3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때 윤경신은 득점 10위에 그치며 다소 폼이 떨어졌고 시즌이 끝난 뒤 HSV 함부르크로 이적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새 팀 소속으로 완전히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은 득실차로 아깝게 놓쳤지만 유럽의 컵 대회 챔피언들이 참가하는 EHF 컵위너스컵에서 우승했고, 윤경신은 두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한다. 2007-08 시즌이 끝나고 2008년 7월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11년 6월까지 실업 팀인 두산 핸드볼선수단에서 활동했다. 2008년 두산 베어스 야구단 시구를 맡기도 했다.

독일에서 활약하는 동안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득점(2905골),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왕(7회)을 기록했으며, 독일 핸드볼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 스코어러로 자리매김했다. 그뿐 아니라 약체 팀인 대한민국 대표 소속으로 올림픽 단일 대회 최다 득점(2004년 58골), 세계선수권 3연속 득점왕(1993, 1995, 1997)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활약들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세계 핸드볼 협회 IHF에서 선정하는 세계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참고로 한국에선 남자는 1989년 강재원, 2001년 윤경신, 여자는 1989년에 김현미, 1996년 임오경이 받았다.

득점 기록만 본다면 핸드볼계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볼 수 있지만 의외로 저평가를 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중하위권 팀 소속으로 여러 차례 리그 최다 득점을 기록했음에도 독일 올해의 선수에 단 한 차례도 뽑히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국제대회에서도 여러 번 득점왕을 기록했음에도 MVP에 선정되지 못했고 올스타엔 단 한번 선정되었다.

축구에서 비슷한 업적을 올린 선수를 찾자면 게르트 뮐러라고 볼 수 있다. 뮐러 또한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에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4회, 월드컵 득점왕 1회 및 발롱도르 수상 1회라는 기록을 갖고 있고 그에 맞는 여러 기록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나 기록에 비해서 저평가 받기도 하는 모습이 윤경신과 상당히 일치한다.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현지인도 따기 어렵다는 독일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굼머스바흐 5년차에는 주장까지 맡게 된다. 함부르크 SV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복귀할 때는 함부르크 팬들이 윤경신을 꼭 잡아야 한다고 집회를 열었으며 상당한 아쉬움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언론에서 윤경신의 위상을 "핸드볼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표현하는 등의 이유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은 맞으나 그들 중에서 최고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고의 핸드볼 선수에 대한 독일의 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10여 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윤경신이 언급된다. 하지만, 확실한 1위로 언급되는 경우는 없다. 1위로 뽑히지 못하는 이유는 윤경신이 속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의 성과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클럽 핸드볼 대회 중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지는 EHF 챔피언스 리그를 한 번도 우승하지 못 했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 했다. 국가대표로서는 아시안 게임에서 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순위권에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에서 한 명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같이 거론 되는 선수 중에 리그 우승 한 번 못 해본 선수는 윤경신이 유일하다.



국내에서 유명한 야구의 박찬호와 추신수, 축구의 차범근과 손흥민 등은 이 논쟁에서 제외하는 것이 맞다. 이들은 본인의 종목에서 최고의 위상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기종목의 정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넓다.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처럼 공과 도구를 함께 사용하는 종목도 모두 구기종목이다. 골프만 생각해도 박세리와 박인비를 넣어서 비교해야 한다. 두 선수 모두 역사상 최고의 여성 골퍼를 뽑을 때, 언급되는 선수들이다. 그리고 박인비는 현재도 현역이다. 배드민턴을 고려하면, 박주봉과 방수현도 고려해야 한다. 이용대-정재성 복식조도 역사상 최고의 남성 복식조를 뽑을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공을 신체로 직접 접촉하는 구기종목 선수 중에서는 김연경이 유일하게 비견되지만, 클럽 우승과 MVP 수상 경력은 김연경이 앞선다. 국가대표팀으로서의 성과는 두 선수 모두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윤경신은 세계선수권에서 3번의 득점왕을 차지했고, 국제핸드볼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1번 수상했다. 김연경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올림픽 득점 신기록과 노메달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으나, 그 외의 메이저 대회에선 한국이 본선 진출을 한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득점 기록은 소멸되었다.



2011년 6월 두산과 계약이 만료된 후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재계약하지 않았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플레잉 코치로 일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의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맡기도 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가장 높은 한국의 운동선수인데다 올림픽 출전 경력도 길어서 기수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선수 겸 플레잉 코치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패를 당해 아쉬움 속에 은퇴하게 되었다. 올림픽 이후 2012년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2013년부터 두산 핸드볼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15년 2월 6일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에 공식적으로 선임되어 두산 핸드볼 팀 감독직과 겸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하고 아시아선수권에서 6위에 그치자, 2016년 2월에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다. 그럼에도 "나라가 부르면 가야 한다. 대한민국 핸드볼에 힘이 될 수 있다면 국제위원 등 행정 분야를 맡겨도 피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대 감독을 맡을 때 대표팀 선수들이 체육관에 도착하면 국민의례부터 하도록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