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초월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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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초월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사건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정권에 저항한 분신자살 시위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가부좌를 풀지 않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위업은 종교적인 열망과 독재 정권의 패악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하고자 하는 진심을 기반으로 했기에 가능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여러 통증 중 굉장히 고통스럽기로 유명한 작열통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견딘 것은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인내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다. 문지방에 발가락 끝을 부딪혔을 때에도 저절로 비명이 나오고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온몸이 지글지글 불타고 있는 상태에서 신음 한 번을 내지 않고 얼굴을 태연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이전에 제자들에게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건 정말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낳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근육은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많기 때문에 소사체는 근육들이 수축해서 자연스레 안으로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표현조차 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어마어마한 의지로 최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펴고 열반했다. 이 엄청난 광경에 경찰들도 넋을 잃고 멍하니 서서 스님을 바라보았고 주위의 승려들은 틱꽝득에게 일제히 절을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려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찰들도 같이 그에게 절을 올렸다.

소신공양이 끝난 후 그의 법체는 다시 한번 소각로에 넣어져 8시간 동안 화장(火葬) 되지만 그의 심장은 전혀 타지 않았다고 하며 이후 남베트남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경찰이 황산을 뿌려 훼손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며 금속 용기에 구리줄로 봉인하여 스웨덴 은행에 맡겨졌다가 이후 하노이 국립 은행에서 소장 중이라고 한다.

한편 틱꽝득의 마지막 열반의 순간을 사진으로 촬영해 세상에 알렸던 미국의 AP통신 소속 종군기자 맬컴 브라운은 이때 촬영했던 사진과 월남전의 이면을 담은 생생한 기사 및 부패한 응오디지엠 정권에 대한 고발로 1964년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8월 28일에 사망하였다.

유튜브에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동영상은 대부분 지워졌으며 구글에서 동영상을 찾을수 있다.